동남아국가연합 확대출범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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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하나의 동남아' 시대가 열린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동남아국가연합 (ASEAN) 은 24~25일 외무장관회담에 앞서 23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신규가입국 가입식을 갖고 라오스.미얀마를 새 회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정정불안으로 가입이 일시 유보된 캄보디아를 제외한 동남아 모든 국가를 한데 묶는 '동남아의 유럽연합 (EU)' 으로 등장하게 됐다.

새 ASEAN은 EU.북미자유무역지대 (NAFTA)에 이어 세계경제의 블록화를 가속하며 주요 경제주체로 떠오르게 됐다.

ASEAN 확대의 의미와 앞으로의 향방을 집중점검한다.

새로운 ASEAN의 등장은 지난 67년8월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5개국이 태국 방콕에 모여 결성한 ASEAN의 완성을 뜻한다.

창립 당시 채택된 '방콕선언' 은 이들 국가간 경제발전.사회문화개발.정치경제안정.회원국간 의견조정이라는 ASEAN의 주요목표를 천명했었다.

당시 동서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이들 5개국은 정치적으로는 베트남.캄보디아등이 경험한 공산화 도미노를 방지하는 한편 미국.일본등 경제대국 사이에서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단결' 을 선택했다.

그러나 지난 95년 베트남의 가입을 계기로 '반공블록' 으로서 ASEAN의 역할은 막을 내렸으며, 이번 2개국의 가입을 계기로 ASEAN은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정치.경제적 결속이 핵심적 목표가 됐다.

최근 내전상황으로 가입이 유보된 캄보디아가 조만간 가입할 경우 ASEAN은 동남아 10개국을 모두 포괄, 명실상부한 동남아블록의 위상을 확립하게 된다.

ASEAN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 지역이다.

풍부한 자원과 함께 5억에 이르는 역내 인구 덕택에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 거대시장을 갖춘 ASEAN의 잠재력은 엄청나다.

이같은 잠재력을 바탕으로 ASEAN은 21세기 미국.일본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등장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ASEAN은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03년까지 역내 공산품과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5% 이하로 줄이는 동남아국가연합 자유무역지대 (AFTA) 설립을 추진중이다.

또 2020년까지 역내 모든 관세를 면제하고 자본과 서비스의 이동을 자유화하는 'ASEAN 비전2020' 프로젝트도 구체화하고 있다.

이밖에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말레이반도를 잇는 철도를 건설하고, 메콩강 삼각주를 공동개발하는등 회원국들간 경제적 결속을 강화하는 인프라 건설에도 적극적이다.

한편 ASEAN 확대는 정치적 의미도 작지 않다.

그동안 중국과 인도라는 대국 사이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ASEAN 회원국들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한 목소리를 내며 독자노선을 지켜나가려는 의지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등 서방의 반대를 거부하고 지난 5월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은 외부간섭을 배제하겠다는 의지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사례다.

미얀마 가입은 인도차이나 진출을 꾀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 의미도 있다.

ASEAN은 또 92년 출범한 동남아국가연합지역포럼 (ARF) 을 주도하며 아태지역의 안보협력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지역정세의 안정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야심찬 포부에도 불구하고 ASEAN은 앞으로 극복해야할 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역내국가들간의 경제적 불균형 해소가 큰 과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싱가포르와 3백~4백달러 수준의 미얀마.라오스등이 심각한 수준차를 극복하고 단일경제권을 이룬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태국 바트화의 폭락에 이은 이 지역 통화들의 연쇄위기 상황에서 보듯이 아직도 이 지역 경제는 취약하다.

그밖에 아직 공산주의 체제를 가진 베트남.라오스등 회원국들 사이의 정치적.사회적 이질성을 극복하는 일도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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