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띄우기' 방방곡곡 들쑤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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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올 초까지 거들떠 보지도 않던 땅을 사러 온다." (경기도 연천읍 L부동산 직원) "땅 거래가 갑자기 늘어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충남 예산군청 관계자)

땅 사자 세력이 '장기 소외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신도시 건설 등의 개발 재료로 땅값이 치솟은 천안.아산, 파주 교하 등 선발 지역은 매기가 끊겼지만 충남 예산.홍성, 충북 제천.진천, 경기 연천 등 개발지 주변은 거래가 부쩍 늘었다. 수년간 꼼짝 않던 이들 지역 땅값은 최근 2~3개월 새 최고 50%가량 뛰었다. 선발 지역에서 발을 뺀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고 값이 덜 오른 곳으로 이동해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있다.

전문가들은 헐값에 산 뒤 전화 등을 통해 비싸게 파는 일명 기획부동산 등 투기 세력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헤집고 다니며 땅값을 끌어올리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외지역 들썩=천안.아산 땅을 사들였던 투자자들이 충남 예산.홍성.보령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산 신도시와 가까운 예산군은 지난달 땅 거래가 1988건으로 1월(731건)보다 세배 가까이 늘었다. 천안 H부동산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21번 국도를 따라 예산~홍성~보령을 옮겨다니며 땅값을 띄우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김천도 땅을 사러 온 외지인들로 북새통이다. 2010년께 경부고속철도 역사가 들어설 것이란 소문 때문이다. 김천 L부동산 관계자는 "경북 구미.대구와 수도권 투자자들이 고속철도 역사 후보지로 거론되는 봉산면 등의 땅을 나오는 대로 사들인다"고 귀띔했다.

충북 진천도 땅값이 심상찮다. 진천군은 지난해 월평균 400건이던 땅 거래가 최근 500여건으로 늘었다. 경기도 안성의 경우 충청권 투자자가 옮겨가면서 땅값이 올랐다. 공도면 관리지역(옛 준농림지)은 평당 50만~100만원으로 두 달 전보다 50% 넘게 뛰었다. 안성 Y공인 관계자는 "그동안 값이 안 움직였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할 재료가 없는데도 투자자가 몰린다"고 말했다.

수도권 북부의 경우 파주시 교하읍.월롱면 등의 땅값이 오르자 이보다 북쪽인 파주시 법원읍, 경기도 연천군 등으로 매기가 이동했다. 파주 흙부동산 김용영 사장은 "지난해까지 거래가 거의 안 되던 연천읍 대광리, 법원읍 대능리.두포리 도로 안쪽까지 투자자들이 매물을 찾아다닌다"고 전했다.

땅값 변동이 미미했던 강원도 원주도 최근 석탄공사 등 공공기관 이전설로 꿈틀거린다. 영동고속도로 남원주.문막나들목 인근 흥업면.문막읍 관리지역 땅값은 평당 20만~40만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0% 정도 올랐다. 원주 J컨설팅 장창섭 사장은 "최근 호가가 무섭게 올라 현지에선 오히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일까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토지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경기도 이천은 기획부동산의 땅 투기가 극성을 부리며 지난달 토지검인이 5217필지로 지난해 같은 기간(1243필지)의 4배를 넘었다.

반면 개발 재료가 드러나 땅값이 이미 오른 곳은 열기가 식었다. 아산시의 경우 지난달 토지거래허가는 396건에 그쳐 거래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2월(917건)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최근 예산으로 옮긴 한 중개업자는 "아산.천안은 규제가 많고 땅값이 오를 만큼 올라 주변 중개업자들도 개발지 주변의 2급지로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LCD공단과 개성공단 개발 호재가 겹친 파주시도 지난달 올 들어 처음으로 거래가 감소했다. 파주시 탄현면 P공인 관계자는 "5월부터 거래가 끊겨 연천군 등으로 건너가기 위해 짐을 싸는 중개업소가 많다"고 말했다.

◆'냄비 장세' 조심해야=최근 토지시장은 정책.재료를 따라 냉.온탕을 오가는 특징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재료와 소문을 따라 발 빠르게 옮겨다녀 부침이 심하다고 지적한다. 파주의 경우 토지투기지역 지정 소문이 돌자 이달 초부터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신도시 건설 등 재료를 업고 땅값이 가파르게 치솟던 교하읍 등 선발 지역은 거래가 뚝 끊기고 가격 상승도 멈췄다. 파주 토지 전문가인 김준환씨는 "파주가 투기지역으로 묶일 경우 땅값 거품이 급격히 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JMK플래닝 진명기 대표는 "땅을 헐값에 사들인 뒤 개발 등의 헛소문을 퍼뜨려 비싸게 되파는 무허가 중개업자 등이 적지 않다"며 "투기수요가 발을 빼면 거품이 꺼지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종수.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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