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그룹 24시] 한일전기 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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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일전기㈜의 부천 공장 직원들이 차세대 주력 제품인 자동급수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다.

한일전기 그룹은 올해 창립 40주년이 되지만 회사 이름보다 '한일자동펌프'라는 제품으로 더 알려져 있다. 30년쯤 전에 가수 서수남.하청일씨가 '물 걱정을 마세요~, 한일, 한일 자동펌프'라는 귀에 익은 CM송을 불렀던 광고 이후에 새로운 TV광고를 하지 않았다. 지금도 서수남.하청일씨의 얼굴이 이 회사의 홍보 책자 등에 등장할 정도다. 그만큼 한일전기는 회사나 그룹 홍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회사는 실속과 안전 경영을 철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펌프 부품과 냉장고 제조로 성공한 재일동포 창업자 김상호(81) 명예회장은 '절대 무리하게 사업을 펼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익 추구보다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제품을 좋은 품질로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웬만해서는 사업 분야나 규모를 확장하지 않는다. 그런 덕에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단 한명의 직원도 정리해고하지 않았다.

이 회사 홍창규 부사장은 "철저히 안전 위주로 경영하기 때문에 금융권에서 한일의 어음은 서로 바꿔주려고 할 정도로 신용이 높다"고 말했다. 주력 제품은 수압이 약한 농촌이나 도시의 소형 건물에서 사용하는 자동펌프다. 가전제품으로는 선풍기.난로. 가습기.탈수기.환풍기 등 내수 위주의 제품들을 만든다. 선풍기가 매출의 15%, 난로가 20%를 차지한다. '코끼리밥솥'으로 유명한 일본 조지루시사의 국내 독점 판매권도 갖고 있다.

수도 사정이 좋아져 펌프 수요가 줄고, 선풍기는 에어컨에 자리를 내주는 추세고, 탈수기 역시 첨단 세탁기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회사 경영진은 "그래도 꼭 필요한 제품들인 만큼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꾸준히 생산해 비용을 줄이고 품질을 높이면 다른 업체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최고의 제품이 되기 때문에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일은 19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렇다고 시장의 변화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수년간 기존의 제품 구성에 다소 변화를 주고 있다. 펌프 분야에서는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에서 대량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하는 절전형 자동급수장치의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수도 사정이 나아져 과거처럼 소형 펌프를 찾는 사람이 줄어든 점을 고려해 대규모로 물을 쓰는 아파트 등에서 전기를 아끼면서 사용할 수 있는 고성능 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2년 전에는 공기청정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올해에는 리모컨이 달린 비데를 출시했다. 홍 부사장은 "시장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자주 쓰지 않는 화려한 기능을 많이 갖춘 신제품보다 실속과 품질에 충실한 제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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