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제대로 … 위기엔 선제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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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뉴스 분석 윤증현 경제팀의 경제운용 방향이 드러났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놓고, 살릴 기업과 죽일 기업을 가려내는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표상 건전해 보이는 은행에도 공적자금을 넣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두기로 했다. 이는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구조조정이 필수적이고, 그러자면 은행의 자본확충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취임사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이 정리돼야 경쟁력이 있는 기업,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에 자금이 물 흐르듯이 공급될 수 있다”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채권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적기에, 실효성 있게 이뤄지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특히 금융회사 자본 확충과 관련해 “필요할 경우 선제적인 자본 투입과 신속한 부실채권 정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기반을 미리 마련해 둬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법규정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8% 밑으로 떨어진 부실은행에 대해서만 공적자금을 넣을 수 있게 돼있다. 은행이 망가져야만 공적자금 투입이 가능한 셈이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한발 앞서 구조조정을 하고 기업 대출을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에 돈을 빌려줬다가 BIS 비율이 하락할 것을 우려하는 은행들은 한국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기업에 대출을 꺼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이 같은 선제적 공적자금 투입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이날 보고서에서 “BIS 비율 8% 이상인 건전한 은행에도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가 당장 공적자금을 투입할 것 같지는 않다. 추진 중인 20조원 규모의 은행자본확충펀드 작동이 우선이다. 공적자금은 어차피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는 것이어서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하다. 반면 자본확충펀드는 제대로 가동만 된다면 그런 부담이 없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선제적인 공적자금 투입에 대해 “은행이 나름대로 안정적 수준의 BIS 비율 등 자본상태를 갖고 있어 현재로선 그 수단을 활용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단 장치를 만들어 놓으면 느낌이 달라진다. 강제력 없이 시장에만 맡기는 자본확충펀드가 기대만큼 돌아가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리 단계에 들어가 있는 부실채권정리기금을 다시 살려내겠다는 것도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겠다는 의미다. 기업의 구조조정용 자산이나 부실자산을 부실채권정리기금에서 인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기금은 약 39조원의 자산을 갖고 있지만 청산될 때까지 자산정리만 할 뿐 새로 부실채권을 인수할 수 없게 돼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실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자산 처리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공적인 자금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캠코의 부실자산 인수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취임한 윤 장관의 첫 작품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3%에서 마이너스 2%로 대폭 낮춘 것이다. 2기 경제팀이 1기 팀에서 건네받은 경제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바닥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국민의 협조를 구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공적자금을 활용한 선제적 구조조정이란 정공법이 선택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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