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투자상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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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사원번호를 받았어요. 오늘부터 주문을 넣을 수 있대요.”

9일 서울 명동의 대신증권 명동지점. 이훈재(사진) 투자상담사의 첫 출근일이다. 1940년생, 우리 나이로 일흔인 그가 11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투자상담사는 증권사와 계약을 맺고 영업 결과에 따라 이익을 나눠 가지는 개인사업자다. 그는 “아는 분들이 계좌를 개설해 줘 벌써 바빠졌다”며 웃었다.

그는 31년간 주택은행에서 일했다. 1998년 8월 서울 반포지점장으로 정년퇴직했다. 그 뒤엔 한동안 주식에 빠졌다. 처음엔 운이 따라 1년도 안 돼 6000만원을 6억원으로 불렸다. 자신감이 생기자 주식을 10만 주 넘게 사들이고 선물에도 손을 댔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리막이었다. 99년 대우채 사태로 일주일 만에 1억5000만원을 날렸다. 부인이 약국을 운영한 덕에 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손에 쥔 돈이 없어 막막했다고 한다. 그는 “재작년에는 단돈 10원도 수중에 없었다”고 말했다. 딸이 한 달에 20만원씩 주는 용돈이 전부였다.

“이대로 생을 마감하면 억울하다”며 일거리를 찾아 나섰지만 녹록지 않았다. 아파트 경비 자리도 나이가 많다고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자격증이라도 있으면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1월 용돈을 모아 책을 사서 증권투자상담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큰 실패를 맛봤지만, 그래도 잘 아는 건 주식과 선물투자였다.

부인은 “공부하다 쓰러진다”고 말렸다. 친구들도 “눈 어두워 책 읽기도 힘든데 무슨 공부냐”고 했다. 그는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책에 매달렸다. “나이 드니까 아침에 본 걸 그 다음날 까먹더라”며 “젊은 사람보다 몇 배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2월, 6월 시험에 내리 떨어진 뒤 11월에 자격증을 따냈다. 연이어 선물거래상담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최고령 합격자였다.

지난해 12월 말 무작정 혼자 명동의 증권사에 가 지점장을 찾았다. “금융업에 30년 넘게 일했고 자격증도 있다. 투자상담사로 일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두 곳에서 “방이 없다”며 거절당했다. 셋째로 찾은 대신증권의 장철원(53) 지점장이 “추천서를 본사에 올리겠다”고 답했다. “처음엔 나이 때문에 망설였지만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직원들에게 본보기가 되리라 생각했다”는 게 장 지점장의 설명이다.

이씨의 목표는 75세까지 투자상담사로 일하는 것이다. 그는 “주식에서 개인이 돈 벌기란 참 어렵다”며 “경험을 활용해 투자자들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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