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들의 엄마 아빠 '동두천 천사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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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사랑 통합어린이집' 최금숙 원장 부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우리 어린이집 졸업생들 중에 장애아와 한 반인 아이가 둘 있더군요. 각각 다른 학교인데, 학기 초에 담임선생님이 장애아 친구를 도와줄 사람 없냐고 물었더니 두 아이 모두 먼저 손을 들었답니다. '제가 저 아이와 짝을 하겠다'면서요.

요즘 그 아이들은 자기네 학교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하대요. 한 아이 담임선생님은 집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그렇게 잘 배려하는지 놀랐다'면서 '가족 중에 혹시 장애인이 있느냐'고 묻기까지 했대요. 통합교육의 효과가 장애를 가진 아이 이상으로 비장애아에게 크다는 걸 확인시켜준 거죠."

그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사랑 통합어린이집' 최금숙(41) 원장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생각할수록 그 자신도 감동스러운 모양이었다. 장애아와 비장애아를 함께 돌보는 어린이집을 처음 열었을 때 부모들의 이해 부족으로 겪어야했던 어려움이 새삼 떠올라서였을까?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뭔가 울컥 치미는 듯한 감동을 느낀 것은 최원장 만이 아니었다. 필자 역시 감전이라도 된 듯 가슴이 떨려왔다. 여덟살, 그 조그만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친구와 먼저 짝이 되겠다고 손을 들었다니, 그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최 원장이 동두천에 경기 북부의 첫 통합어린이집인 이곳을 연 것은 2001년 10월. 시각장애인인 남편조차 맨 처음 최 원장이 장애아동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땐 너무 힘들 것 같다며 말렸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학부모들은 뭔가 다른 눈빛으로 말을 더듬는 아이들이 섞여있는 걸 보자 자신의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버렸다. 장애아를 계속 받을 경우 고소하겠다는 몰지각한 부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2003년 졸업생은 9명 뿐이었다. 하지만 최 원장 부부의 노력 끝에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 지난 2월엔 25명(장애아 2명)의 원생을 졸업시켰다.

"이젠 일반 아이들 엄마들도 '서로 돕는 사회를 만들어줘서 좋은 것 같다'고 하세요. 정서교육에 좋은 것은 물론, 다소 소극적이던 아이들은 장애아들과 어울리면서 자신감을 찾고 적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오히려 말만 '통합'이지, 특수교육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장애아들에게 미안해요."

이쯤에서 동두천의 '천사부부'로 소문난 최 원장 부부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최씨는 어린이집 대표이면서 침술원을 운영하는 남편 김지욱(44)씨와 1988년 서울 가톨릭시각장애인협회의 입사동기(?)로 첫 인연을 맺었다. 김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야구공에 눈을 맞은 뒤 다른 한쪽 눈마저 빛을 잃은 시각장애인. 협회에서 그는 소리도서를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한편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언니를 보며 자란 최씨는 수녀가 되기 위한 예비과정을 밟으며 장애아동들을 돌보는 후원봉사자였다. 얼마 후 김씨와 한 팀으로 일하게 된 최씨는 "군산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하는 김씨의 밑반찬 좀 챙겨줘라"는 전임자의 말에 따라 매일 밑반찬을 챙겨다 주기 시작했다. 집 방향이 같다며 명동에서 시청, 덕수궁 길을 돌아 매일 김씨를 데려다 주기도 했다.

그러기를 1년. 김씨가 청혼의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최씨의 대답을 얻는 데는 1년 4개월이 걸렸다. 김씨는 매일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 짝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만은 저한테 양보하십시요"하고. 최씨의 가족을 설득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장애인 가정의 아픔을 누구보다 아는 이들이기에 반대가 더욱 심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1991년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이듬해 최씨의 친정이 있는 동두천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쁜 딸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날 최씨가 장애아동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하고 싶던 사업이었다. 맨 처음 시력을 잃고 지팡이를 쥐고 나섰을 때의 아픈 기억들 때문이었다. "저기…"하고 더듬더듬 다가가면 소리까지 지르며 달아나던 사람들…. 시각장애인을 마치 괴물 취급하는 그들을 보며 장애아를 평소 접해보지 못한 교육이 문제임을 절실히 느꼈던 그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통합교육이 부딪힐 수많은 난관에 아내가 힘겨워할 것이 안타까왔다. "남편 장애인 하나로 만족해라"며 말려봤다. 하지만 최씨의 뜻은 이미 굳어있었다.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방송통신대학에서 김씨는 교육학을, 최씨는 가정학을 공부했다.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었던 최씨는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 특수교육을 공부했고, 언어.놀이치료 교육도 받았다. 시립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동안'장애아동반'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드디어 2001년 130평의 대지에 널찍한 단층짜리 어린이집 건물이 세워졌다.

현재 만 2세 ̄6세인 90명의 이 어린이집 원아들 중에 12명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다. 뇌성마비와 다운증후군.자폐.정신지체.언어장애 등 장애의 종류도 다양하다. 오전 10시부터 점심시간까지는 장애아와 일반아동들이 함께 놀지만, 오후 2시부터 장애아들에겐 언어.놀이.국악치료 등 특수교육이 실시된다. 특수교사는 최 원장을 포함해 2명. 여기에 최 원장에게 얽힌(?) 자원봉사자들이 국악.놀이치료를 돕고 있다.

"소문이 나면서 장애아를 가진 부모님들의 문의가 많아졌어요. 하지만 아직은 더 많이 받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안되는 것 같아요. 지금 다니는 아이들에 대해서조차 소홀해지면 안되잖아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아이들만 8명 쯤 된단다. 하지만 이 부부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 건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아예 받기가 힘든 현실이다. 현재의 인력으론 전체 교육을 망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또한번 사고(?)를 쳤다. 장애아 전담 어린이집을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복지부에 신청, 2억3천여만원의 건축비를 지원받게 됐다. 물론 장애아 특수시설을 건축하기엔 모자란 액수다. 땅과 기자재는 따로 부담해야 한다. 260평의 땅은 간신히 마련했다. 하지만 기자재 등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1억원은 어떻게 충당할지 난감할 뿐이다. 물놀이를 좋아하는데도 수영장 한번 가기 힘든 장애아들을 위해 지하에 실내 수영장까지 만들었으면 하는 최씨의 생각은 말 그대로 '꿈'이다.

"아내한테 '꿈 깨라'고 해요. 좋은 시설 만들자면 돈이 끝이 필요하잖아요. 지금도 기자재를 어떻게 들여놓나 걱정인데…. 건물만 지으면 뭐하나 싶어 가슴이 갑갑하지만, 오는 8월쯤엔 일단 착공할 겁니다. 어떻게든 길이 열리겠죠."

두 사람은 마주보며 웃었다. 희망을 언제나 품고 사는 이들만이 보일 수 있는 미소였다.

"망해도 좋아요. 적어도 이 동두천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만큼은 저희가 바꿨다고 생각하니까요."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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