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세기를찾아서]25.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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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페테르부르크는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고도(古都)입니다.당신은 이 도시를 ‘역설의 도시’라 하였습니다. 일찍이 표트르대제가 낙후한 제정러시아를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혼신의 정열을 기울여 이룩한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제정(帝政)을 붕괴시킨 혁명의 도시가 되어버린 역사의 아이러니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유럽을 향하여 열린 창’이었던 페테르부르크는 그 열린 창으로 쏟아져들어온 새로운 사상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제정러시아의 전제정치가 역조명되고 결국 제정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혁명의 자취였습니다.최초의 사회주의 소비에트정권이 수립된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05년 빵과 자유를 왜치며 행진해온 민중들이 총탄의 세례를 받고 쓰러진 궁전광장,농노제와 전제 정치를 반대하여 궐기한 지식인들의 양심이 좌절된 데카브리스트광장 그리고 1917년 10월 혁명의 신호를 올린 오로라 순양함 등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혁명의 자취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남아 있습니다.이러한 자취를 찾아다니는 동안 페테르부르크는 혁명의 도시가 아니라 아름다운 도시이며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혁명과 예술’이것 역시 우리들의 도식에서는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곳에는 1백개나 되는 섬 그리고 네바강의 수많은 지류와 운하를 이어주는 3백65개의 아름다운 다리들이 있습니다.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북방의 베니스’라 부르기도 합니다.바로크양식의 중후한 건물에는 정교한 조각들이 기둥과 벽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울창한 수목들로 이루어진 공원에는 적재적소에 서 있는 조각상들이 이곳에서 살다 간 예술가들의 심혼을 되살려 놓고 있습니다.페테르부르크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격조 높은 예술의 향기를 뿜어줍니다.

모스크바에서는 톨스토이가 ‘부활’을 집필했던 집이 찾는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남아 있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페테르부르크 교외에 있는 푸슈킨의 유년학교는 넓은 호수와 더불어 ‘언제나 새로운 시인’으로서 그의 면모가 지금도 많은 방문객들과 함께 생생히 살아 있었습니다.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발견한 것은 이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었습니다. 이 도시에 묻혀 있는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그것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에 대하여 가지는 자부심이 아니라 이곳에서 심혼을 불사르고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삶과 예술을 함께 껴안는 애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애정이야말로 모든 것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애정은 페테르부르크를 모독하는 어떠한 전제와 침략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혁명으로 역사의 무대에 솟아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80만 명의 목숨을 바쳐가면서 900일에 걸친 독일군의 포위를 견디는 저력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애정을 바칠 수 있는 도시를 가진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고 강한 사람들이라는 부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이 도시에서 지금까지도 그들의 정신을 나누고 있는 예술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고리키,고골리,차이코프스키,스트라빈스키,도스토예프스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사랑했고 이 도시를 만들어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푸슈킨의 동상이 서있는 예술광장에는 그의 동상을 가운데다 두고 오른편에는 발레와 오페라의 세계적인 명소인 무소르크스키 극장이 있고 왼편에는 러시아 민속박물관이 러시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뒤편에 있는 러시아미술관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볼가강의 배 끄는 사람들을 그린 레핀의 ‘인간’을 비롯하여 칸딘스키의 추상에 이르기까지 역대화가들의 명작들이 그 긴 전시장을 가득히 메우고 있습니다.그리고 맞은 편에는 유명한 레닌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관이 있습니다.

레닌 필 공연장 포스터에서는 수석 지휘자인 체미르카노프가 지휘하는 파멜라 프랭크의 바이얼린협연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3천5백원의 입장권을 사면서 서울에서 10만원이 넘는 입장권을 도로 팔까 말까를 망설였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레닌 필의 연주장은 흡사 연인들의 만남과 같은 다정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조금도 우람하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음향을 살려내는 연주장의 구조에서 뿐만이 아니라 거기서 만나고 있는 연주자와 관객들이 나누고 있는 애정의 공감이 부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입석까지 가득 매운 연주장에서 러시안 카니벌의 음률과 함께 이루어내고 있는 연주자와 관객의 일체감은 또 하나의 예술이었습니다. 나는 그 공감의 높이와 넓이에서 다시 한번 이 도시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오만(傲慢)을 ‘죄’(罪)로 규정하고 그것을 벌(罰)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오만이 인간의 자연에 대한 오만이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오만이건 오만은 애정이 결핍될 때 나타나는 질병인지도 모릅니다.진정한 애정은 오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황제이건, 그것이 이념이건, 어떤 개인이건 진정한 애정은 오만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페테르부르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페테르부르크는 결코 역설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이 도시의 숨결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애정 속에서 혁명과 예술이 하나로 융화되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들이 애정을 바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건물을 세우고 도로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론 수많은 것을 심고 가꾸어 나가야 함에 틀림없지만 결국은 사람을 만들어내고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애정을 바칠 수 있고 우리들의 애정을 키워낼 수 있는 도시는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도시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심혼을 깨우고 오만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고 강인한 힘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가꾸어주리라 믿습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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