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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숭례문 … 문화재연구소 복원팀의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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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화재 그후 1년, ‘숭례문의 혼’을 되살려내려는 현판 복원팀의 손길이 분주하다. 현판 복원은 다음 달 말 완료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혜진·김순관·정혜영씨. [프리랜서=김성태]

 흰 가운을 입고 흰 마스크를 쓴 세 사람이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다. 주위에는 매스와 핀셋·가위 등이 잘 정리돼 있다. 조명은 흰 침대 위를 집중적으로 비추고 있다. 환자는 키 2m26㎝, 몸무게 106㎏이었다. 여기저기 팬 상처가 깊었고, 몸은 조각 나 있었다. 환자는 ‘숭례문(崇禮門) 현판’이었다. 5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내에 있는 보존과학센터는 숭례문 현판을 되살리기 위한 치료에 한창이었다. 이곳은 적외선·방사선 촬영기뿐만 아니라 컴퓨터단층(CT) 촬영기까지 갖추고 있는 국내 최고 권위의 문화재 병원이다.

복원팀 김순관(48) 학예연구사는 ‘숭례문 현판 주치의’다. 지난해 2월 10일 오후 11시10분, 불길이 숭례문 전체로 옮겨 붙기 시작하면서 진화에 나섰던 소방관이 현판을 분리했다. 이때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지만 현판의 목숨은 건졌다. 금이 가고 물에 젖은 현판은 서울고궁박물관 보존과학실로 옮겨졌다. 당시 현판은 ‘인공호흡기를 단 중환자’였다.

치료 1단계는 ‘뒤틀림 없는 건조’였다. 잘못하면 현판이 원래 모습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었다. 습도와 온도를 최적의 상태로 맞추기 위해 복원팀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지난해 4월 15일, 현판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송돼 왔다.

2단계 치료는 분해와 세척이었다. 각종 특수 촬영 끝에 현판은 38조각으로 구성돼 있다는 게 밝혀졌다. 15세기 만들어진 현판은 긴 시간 동안 수없이 보수됐고, 그때마다 새 시대의 나무와 도구가 덧대어졌다. 지금의 현판에는 15세기 벌채된 나무부터 1960년대 나무가 공존하고 있다. 숭례문의 역사가 현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탄소연대와 연륜연대(나이테) 측정으로 밝혀낸 사실이다. 복원팀은 철저한 치료를 위해 오염물질을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38조각을 분해해 세척하기로 결정했다.

상처를 본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3단계다. 현재 현판은 바로 이 단계에 놓여 있다. ‘진화 중 떨어진 탓에 생긴 갈라짐, 한국전쟁 당시 총상, 못 자국’마다 복원팀이 꼼꼼히 충전재를 채워 넣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치료의 마지막 단계로 간다. 원래 모양대로 조립하고 각자(刻字·글자를 새겨 넣음)와 채색을 해야 한다. 김 학예연구사는 “다음 달 말이면 완치된 현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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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팀은 하루 걸러 밤샘 작업을 했다. 무엇 하나 쉽게 진행할 수 없었다. 김 학예연구사는 “해체할 때 현판과 테두리 목, 뒷면 보강판을 연결하는 못을 그냥 뽑아낼 경우 주변 목재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각도와 깊이로 박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X선 촬영을 했고 1.5㎏에 달하는 200개의 공업용 못을 족집게로 하나하나 제거했다”며 복원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치료된 현판은 숭례문이 복원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원본은 박물관에 놓고, 만약을 대비해 복제품을 걸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현판은 숭례문의 얼굴인 만큼 자기 자리로 가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 내려졌다.

 대전=이에스더 기자 ,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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