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s] 주부 창업 명당은 …‘동네 주파수’미치는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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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결혼 후 10년 동안 집안일만 하던 전현진(36)씨는 지난해 9월 집 근처 상가에 여성 전용 피트니스 클럽을 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를 돌봐야 하는 그에게 창업은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 그가 ‘사장님’으로 변신한 것은 육아와 사업을 병행할 수 있는 업종을 고른 덕이다. 그가 운영하는 ‘커브스코리아 목동클럽’은 여성들이 30분 동안 유·무산소 운동을 번갈아 할 수 있는 곳이다. 일반 헬스클럽의 무거운 장비 대신 유압식 기계를 둬 근력운동을 쉽게 할 수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1시, 오후 4~8시. 토요일은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문을 열고 일요일은 쉰다. 그는 “오전에 트레이너들과 함께 클럽 일을 보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쓰기 때문에 아이들이 집에 올 때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를 하는 남편은 아파트 단지에 광고 전단을 돌리거나 가사를 분담하며 돕는다.

그는 “살고 있는 지역에서 창업한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주부 창업은 잘 아는 지역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서울 목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주상복합단지가 섞여 있다. 중산층 가정의 주부들이 많아 개업 3개월 만에 회원을 300명가량 확보했다. 임대료를 빼고 가맹비와 인테리어를 합친 창업 비용은 1억4000만원가량. 그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직접 트레이너로 뛰기 때문에 사장인 줄 모르는 손님도 많다”며 “창업하면 무작정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전업 주부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불황으로 가계를 가장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는 입장이 된 이들의 관심이 높다. 최근 몇 년 새 주부 창업자는 크게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전국 사업체 322만4000곳의 대표 가운데 37%가 여성이다. 여성 중 60%는 주부다. 하지만 주부들은 자녀 양육과 가사를 사업과 병행해야 하는 데다 사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적어 창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자녀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업종을 찾거나, 주부만의 장점을 살려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은 “주부는 거주지가 가까운 곳에서 살림 능력 중 자신 있는 분야를 연계해 창업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미숙(44)씨는 청소 업종에서 주부의 꼼꼼함을 살려 기반을 닦았다. 18년 동안 전업 주부로 지내던 그는 남편의 건설업체가 위기를 맞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처음 4년간은 보험영업 일을 했다. 2006년 말 청소 전문 업체인 크리니트의 분당지사를 냈다. 프랜차이즈인 해당 업체에서 1호 여성 창업자였다. “남자들도 힘든 일을 왜 하려 하느냐며 가족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하지만 청소야말로 주부가 전문가잖아요.”

사업 초기 그는 업체들이 여성에게 일을 맡기려 하지 않아 고전했다. 하지만 어렵게 따낸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 신뢰를 쌓았다. 대형 식당 같은 외식업체의 경우 영업이 끝난 오후 11시부터 새벽까지 청소를 한다. 그는 “내가 그 가게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청소를 했다”며 “데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도 꼼꼼히 체크했더니 나중엔 다른 업체를 연결해 주더라”고 말했다. 그는 10개 문항으로 된 설문지를 만들어 청소 상태와 인부들의 복장, 인사성까지 자체 평가했다.

가맹비와 장비 구입비 등 2300만원을 들인 그는 현재 20명 정도를 데리고 극장·외식업체를 청소하며 월 700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린다. 그는 “젊은 남자 사장들이 어머니나 누나처럼 여기며 사업과 가정 일을 상담하는 일도 있다”며 “주부는 육체적으로 웬만큼 힘든 일도 생각보다 잘 견디기 때문에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주부만의 감수성으로 고객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지난해 7월 동연옥(51)씨는 서울 문정동에 호아센 베트남쌀국수점을 열었다. 그는 “아줌마 마인드를 최고경영자(CEO) 마인드로 바꾸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가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주방장이 무단 결근하고 점포 하수구가 막히는 등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살림만 하던 그가 혼자 처리하기에는 벅찼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 그는 곧 주부의 섬세함을 가미했다. 테이블에 계산서를 뒤집어 놓으면서 뒷면에 평소 좋아하던 글과 그림을 코팅해 넣었다. 화장실과 매장 곳곳에도 좋은 글과 그림을 내걸었다. 명함에는 3500~4000원 상당의 메뉴를 공짜로 주는 쿠폰을 인쇄해 나눠줬다. 아내와 어머니로 갈고 닦은 손길로 주부 창업자의 단점을 이겨낸 것이다.  

김성탁 기자


주부 창업 성공하려면

[1] 소비자로서 경험한 것을 창업에 활용하라

[2] 살림 능력 중 자신 있는 분야를 창업 아이템과 연계하라

[3] 부업 마인드를 버리고 프로 정신을 가져라

[4] 가족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라

[5] 가사·육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라

[6] 여성 지원기관의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하라

[7]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사업을 하라

[8] 가사·육아 부담이 클 경우에는 동업을 고려하라

[9] 인테리어 같은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비용 대비 수익을 고려하라

[10] 교육을 통해 사업가 자질을 키운 뒤 창업하라

자료:한국창업전략연구소(www.changup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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