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웃들의‘무료 수퍼’ 식료품 기부 편하게 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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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햄 한 개만 더 줘라.”

4일 오후 2시 서울 도봉구 창동역 역사(驛舍) 1층에 있는 도봉푸드마켓(옛 서울푸드마켓). 80㎡ 남짓한 매장에 쌀·라면·비누·과자·밀가루 등 생필품이 진열돼 있다. 회원 김오수(81·서울 창동) 할아버지가 곽은철(42) 소장에게 햄을 하나 더 달라고 부탁한다. 할머니가 특히 햄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의 간청에 곽 소장이 햄 하나를 덤으로 넣어 준다. 그는 “재고량을 봐서 어르신들에게 햄 한두 개씩 더 드리는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 5일 문을 연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 직원들이 24개 푸드마켓에 배분할 기부물품을 검사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2003년 3월 창동역에서 서울푸드마켓이 첫선을 보인 지 6년. 서울에 24개의 푸드마켓이 생활이 어려운 이들의 ‘무료 수퍼마켓’ 역할을 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시민이 회원으로 가입하면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 5개 품목 이내에서 값을 치르지 않고 물건을 살 수 있다.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여는 푸드마켓은 쌀·고추장·라면 등 생필품 20여 가지를 갖추고 있다. 기업·개인이 기부한 물품이거나 마켓이 기부금을 받아 구입해 놓은 것이다. 푸드마켓은 구청이나 복지단체가 운영을 맡는다. 이용자는 푸드마켓 한 곳당 하루 30~40명 선이다.

◆기부 물품 쏠림현상=당뇨병 때문에 쌀밥을 먹을 수 없는 노인이 회원의 30%를 차지하는 중구 푸드마켓은 잡곡이 부족할 때가 많다. 여성 회원이 70%가 넘는 양천구 푸드마켓은 생리대를 확보하느라 애를 먹는다. 우시장이 있는 금천구와 매달 100인분의 양념 돼지갈비를 기부받는 은평구 등은 고기가 정기적으로 진열대에 오르지만 다른 마켓에서는 고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야채는 마켓별로 차이가 있지만 주로 여름에만 나온다. 반찬거리도 구하기 힘들다. 김정조(73·서울 도봉동) 할머니는 “푸드마켓에서 양념장을 가져가도 함께 먹을 반찬이 없다”고 말했다. 푸드마켓에서는 반찬 대용으로 인스턴트 식품을 권하지만, 집안에 전자레인지가 없는 회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푸드마켓별로 기부를 받아 회원들에게 나눠주다 보니 지역적 편차가 생기는 것이다. 그나마도 경제위기로 기업과 개인의 기부가 줄었다. 올해 설 연휴의 경우 도봉푸드마켓에는 서울메트로 자원봉사단에서 100만원을 기부한 것을 제외하고는 기부가 뚝 끊겼다. 지난해 설에는 4개 기업에서 특별기부를 하고 개인도 여러 사람 기부해 왔다.

서울시가 5일 도봉구 창동에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를 설립한 것은 기부물품의 수급 불균형을 조절하고 대규모 기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기부물품의 물류센터 격인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는 23개 기업이 보내는 50여 가지의 기부물품을 받아 지역 푸드마켓으로 나눠주는 역할을 맡는다.

◆제도적 뒷받침 필요=연세대 강철희(사회복지학)교수는 “푸드마켓 사업에서 많은 기부를 한 기업들에 대해 군납 등 국가 발주 사업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등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인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외국에서는 푸드마켓이 남는 식품을 소외계층과 나누는 차원에서 활성화돼 있고 기부 물품의 유통기한 관리 등을 국가가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현재 ‘얼굴 없는’ 기부자는 푸드마켓별로 3~4명에 머물고 있다. 기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가까운 푸드마켓을 찾아가면 된다. 기부 물품이 많으면 푸드마켓의 담당자가 직접 찾아가 물건을 받아간다. 기업에서 대량으로 기부하려면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02-786-1377)에 전화하면 된다.

이현택·김효은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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