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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바이 코리아’ 종목 들여다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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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바이 코리아’, 양도 양이지만 내용이 괜찮다. 단타성보다는 장기 투자를 염두에 둔 매수세가 상대적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삼성전자·포스코·현대중공업·한국전력 등 한국의 간판 제조업체들이 외국인의 집중 매수 종목에 올랐다. 외국인이 순매수를 크게 늘린 1월 28일 이후 이들의 순매수 상위 5개 종목에는 수출 관련 제조업체가 4개나 들어 있다. <표 참조>


그 가운데 지난 6일까지 삼성전자의 순매수 금액은 5866억원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짧은 시간에 주가를 올려 차익을 보겠다는 전략이라면 덩치가 작은 종목을 택하는 게 보통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 주요 제조업체의 4분기 실적 발표가 끝난 직후부터 외국인 순매수가 본격화된 점을 주목하고 있다. 즉 국내 업체들의 4분기 실적이 해외 경쟁업체에 비해 좋았고, 이는 앞으로 전개될 글로벌 생존경쟁에서 한국 업체들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기대를 낳았다는 것이다. 때마침 지난달 23일 세계 5위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독일계 키몬다가 파산했고,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은 현금이 말라붙어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또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의 한국 상장 제조업체들의 부채비율도 글로벌 기업들이 부채를 줄여야 하는 국면에서 긍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3분기 현재 코스피시장 제조업체의 평균 부채비율은 원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101%에 그쳤다.

이와 함께 환율 효과도 무시 못할 요인으로 거론된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달러화로 환산한 국내 주가는 크게 낮아진 상태다. 동양종금증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 잣대로 활용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 지수는 지난해 초에 비해 5일 현재 54.5% 하락했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외국인들은 달러가 강세일 때 한국 주식을 바겐세일 가격으로 샀다가 나중에 시세차익은 물론 환차익까지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세계 주요 조사기관의 원-달러 환율 전망을 취합해 분석한 결과 달러당 1200원대가 적정 환율로 나타났다. 원화 가치가 달러당 1380원대에 한국 주식에 투자했다가 나중에 1200원으로 높아진다면 달러당 180원의 환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뜻이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원-달러 환율이 1300 후반대에서는 외국인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형 제조업체 주식을 지속적으로 사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편 외국인의 순매수는 지난 6일로 8일째 이어졌다. 2007년 4월 이후 21개월 만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들이 대만과 인도, 태국에서 순매도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외국인은 연초부터 1월 27일까지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에서 2104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하면서도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을 통해 9828억원의 순매도를 했다. 앞문(코스피)으로 들어온 돈보다 뒷문(ETF)으로 나간 돈이 많았던 셈이다. 그러나 28일 이후 ETF 순매도 금액이 확 준 반면 주식 순매수 규모는 크게 늘어 실질적인 ‘바이 코리아’의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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