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미의 열린 마음, 열린 종교] 4. 바하이 신앙 (Bahai Faith)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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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 덴튼 포드는 세계 종교의 통합을 기원하는 바하이 교도다. 남북 문제를 연구하는 그의 일도 그런 신앙과 관계가 있을까. 사진= 정대영(에프비전 대표)

바하이의 예배일인 일요일, 서울 후암동의 바하이 본부로 나섰다. 여러 나라 사람이 모인 공동체 예배는 예식이 전혀 없어 흡사 캐주얼한 모임 같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한다. 쳐다보는 눈길에 따스함이 있고 목소리엔 은은한 사랑이 있다.

한국에 바하이 신앙이 전래 된 것은 1921년. 아그네스 알렉산더라는 한 교우에 의해 서울에서 첫 집회가 열렸다. 등록 교우는 3500명이나 활동하는 사람은 200여명에 불과하다. 서울.부산.대구.안양 등 전국 10여곳에 작은 공동체 모임이 있다. 세계적 교세도 크지 않다. 600만명의 교우와 161년의 역사를 가진 비교적 젊은 종교다. 하지만 브리태니커 연감에는 기독교 다음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종교로 기록됐다.

서울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덴튼 포드를 만났다. 미국 텍사스주 출신인 그는 1996년 한국에 와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북한 인권문제, 탈북자의 남한 적응, 남북한 국사 교과서의 민족주의 개념을 연구 중이다. 그가 신앙에 몰입하게 된 것은 96년부터다. 말씀의 한 구절에 영적인 눈을 떴고 지금은 신앙을 떠나 살 수 없는 상태다.

"신앙으로 생각과 사고방식, 마음가짐, 정신이 바뀌었어요. 더 크게 보고, 더 깊이 듣게 되었지요. 바하이를 알고 성경과 코란도 읽게 됐어요. 내 것을 알기 위해선 남의 것을 더 잘 알아야 하거든요."

바하이 신앙은 바하올라가 하느님이 보낸 가장 최근의 현시자이며, 그의 말씀은 하느님의 계시라고 믿는다. 바하올라는 1817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태어나 스물일곱에 바하이를 일으켰다. 오직 한 분인 하느님, 유일신의 이름으로 모든 종교가 하나로 통합되길 추구했다.

"바하올라는 인류에게 하느님의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온 현시자입니다. 세계는 한 국가이며, 인류는 민족.인종의 편견 없이 하나의 형제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종교가 유일신에 통합돼 하나의 공동체로 융화되길 바라요. 그래야 세계가 평화로울 겁니다."

그러나 역사는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과 대립의 피를 흘리지 않았나 싶다. 바하이의 생존에도 '피의 역사'가 있었고 박해받는 종교일수록 힘이 강해진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바하올라가 태어나기 전 9년 동안 그의 출현을 예언했던 바압이 있었습니다. 바압은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모하메트)의 후예지만 이슬람에게 혹독한 박해를 받다 결국 처형됐고 그때 2만명의 추종자도 순교했습니다."

바압의 예언대로 바하올라가 나타나 뒤를 이었지만 그 역시 탄압받아 투옥과 유배를 겪었다. 조국 이란에서 이단자로 취급된 바압과 바하올라는 결국 이스라엘에 안장됐고, 오늘날 바하이의 성지순례 장소가 됐다.

이슬람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예언이 무함마드에 의해 완성됐다고 믿는다. 그런데 1200년이 지난 시점에 또 다른 예언자가 나왔다니 바하이는 이슬람에 적과 같은 존재다. 79년 이란혁명 이후 호메이니의 박해가 심해지자 바하이 교도는 대대적으로 이란을 탈출, 그들의 신앙을 전세계로 퍼뜨렸다.

시기적으로 예언자는 500년, 1000년을 주기로 나온다. 그런데 지역적으로 유독 중동에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은 어두운 곳으로 현시자를 보냅니다. 역사를 보면 주기적으로 암흑과 같은 시기, 암울한 세상에 빛을 주러 때맞춰 오십니다."

아브라함.모세.크리스나.조로아스터.부처.예수.무함마드.바압.바하올라…. 바하이에서 말하는 현시자는 주요 종교의 창시자로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고리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현시자들, 그들이 왔다 갔다. 바하이가 추구하는 종교의 통합, 그것으로 이루어질 세계평화, 그게 바로 하느님이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김나미 작가.요가스라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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