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Market Watch] 세계 증시, ‘팍스 아메리카나’에 달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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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26면

10여 년 사이에 미국은 세상 사람들을 두 번 놀라게 했다.
첫째는 2000년 대선이다.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어 부시가 최종 승리했다. 승자를 가리는 과정은 험난했다. 플로리다주 오렌지 카운티의 투표가 무효냐 아니냐를 놓고 한 달 넘게 소송이 거듭됐다. 당연히 한 달 넘는 이 기간 동안 대통령 당선자가 가려지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정치 시스템을 갖춘 미국에서 벌어진 소동은 전 세계인이 “아니 미국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둘째는 2008년 금융위기. 다들 미국은 금융에 관한 한 원칙을 잘 지키고 위험 관리에도 철저할 것으로 생각했다. 또 설사 어떤 경제적 위기가 오더라도 미국 정부가 나서면 무사히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막상 사고가 터지자 이런 믿음은 무참히 깨졌다. 혼란도 이런 혼란이 없다. 위기가 발화되어 힘을 키워 가던 지난해 상반기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수습 과정에서는 지원된 자금이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도덕적 해이가 판을 친다. 미국 금융회사의 위상은 아르헨티나의 위기를 얘기하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에 대해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꼼의 대상이 될 정도로 낮아졌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 배드뱅크를 수립하는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려면 부실 자산을 처리해야 한다. 정부가 부실을 떠안을 경우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높아져 위기 극복이 빨라질 것이란 기대로 주가가 올랐다.

배드뱅크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 약속했던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내놓았던 방안은 금융회사 사이에 입찰을 부쳐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기관의 부실 자산부터 사 주는 역경매 방안이었다. 결과는 시행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부실 자산의 가격을 책정하기 어렵다는 현실론과 부실 자산의 실체가 밝혀질 것을 두려워한 금융회사들의 반대 때문이었다(배드뱅크와 역경매가 실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금융회사의 자본 확충도 마찬가지다. 부시 행정부 당시 금융회사에 자본을 투여하려던 계획은 은행 국유화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면서 실패했다. 그런데 금융회사의 모럴 해저드가 문제되면서 두 달여 만에 상환 우선주 방안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는 국유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분간 주식시장은 정책에 대한 기대가 좌우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가 모든 화력을 집중해 대응하는데 시장이 여기에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대가 사라지거나, 혹은 주가가 올라 기대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시점까지 시장이 회복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책이 모이고 정리되는 동안 시장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고 경제도 회복되어야 한다. 투자자는 성공을 기대할 때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한다. 그러나 기대가 깨졌다고 생각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시장에 물량이 얼마나 쏟아질지 알 수 없다. 결국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란 말이 머쓱한 지금도 미국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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