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김달수.이진희.강재언 그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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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5월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재일교포 작가 김달수(金達洙)씨를 추모하는 모임이 추진되고 있다.

그와 함께 반세기 동안 재일(在日) 인생의 고락을 같이 했던 이진희(李進熙.69).강재언(姜在彦.72)씨등이 동분서주하며 추모회 장소를 물색하고

초청장을 발송하며 한편으로는 金씨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펼쳐나갈 방법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미 타계한 金씨를 포함해 3인 모두 재일교포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한.일 역사의 대결현장에서 고통받고 몸부림치며 오늘의 모습을 갖추어온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작가 김달수씨가 일본의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작가).하타다 다카시(旗田巍.사학자)를 포함한 지식층에서조차 대단한 존경을 받아온 것은 사실(史實)을

사실대로 말하되 현장르포와 일본인들의 증언을

통해 고대 한.일문화관계사를 치밀하게 검증해온 열정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역작으로 손꼽히는'일본 속의 조선문화'시리즈 12권은 북으로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남으로는 오키나와(沖繩)에 이르기까지 21년 동안 한국의 유물.유적과 발자취를 훑어내려간 집념의 결과였다.

이진희씨는 일본의 대한(對韓)역사 인식의 오류를'광개토대왕 비문 변조설'을 통해 검증하는데 청.장년기를 몽땅 바쳤다.참으로 외로운 싸움에서도 그가 지쳐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일본.중국 고고학자들과의 고증(考證)대결에서도 그는 결코 물러선 일이 없다.

또 한사람의 인물 강재언씨는 과거 불행했던 한.일 근대사를 사상사측면에서 체계화했다.'조선근대의 변혁운동''근대조선의 사상''재일 조선인 운동사''재일 조선인 도항사(渡航史)'등에 관한 많은 연구업적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일본제국주의의 이한제한(以韓制韓:한국인을 이용해 한국을 제압한다)정책의 실상을 파헤친 부분도 눈여겨 볼만 하다.

3인 모두는 40~60년대에 사회주의 신봉자로 조총련의 활동에 깊이 관여한 경력이 있다.그러나 그들은'사회주의 사상이 인간을 위한 것,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헌신짝처럼 버려야 한다'며 관계를 청산했다.그들은 정치를

떠나서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는 조국애를 학문을 통해 불태웠으며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민족차별을 극복함으로써 재일교포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3인의 학문은 일본의 잘못된 한.일 역사인식을 서서히 바꾸어가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일본 국가형성에 이바지했던 고대 조선인들이 도래인(渡來人)으로서 평가받았고 16세기 조선통신사의 영향을 알리는데 공헌했다.

교포문제에 관해서 3인은 조국과 떨어진 재일(在日)이 아니라 조국 속의,

그리고 조국과의 일체감 속에'재일'을 생각해 왔다.3인이 참여해 만든 월간지'삼천리''청구'는

바로 민족이라는 시각에서 재일교포

문제를 다루어 왔다.이슈가 생길 때마다 재일교포들이 논박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했으며 2세 작가 이양지(李良枝)씨도 발굴해 일본 저널리즘 수준에 대응할 만한 잡지로 끌어올렸다.

이제 3인의 학문세계에 저녁 노을이 지고 있다.김달수씨는 타계하고 이진희.강재언씨는

머리가 하얗게 셌다.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유산을 이어나갈 2,3세들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그들은 3세들의 민족의식 풍화(風化)현상에 가슴아파 한다.그것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 해도 이어주고 이어받아야

할 터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한숨짓고 있다.

한국인으로 남을까,일본인이 될까의 선택에 고민하는 다음 세대들.그러나 여전히 일본사회에서 소외당하는 그들을 어떻게 이끌어갈까를 생각한다.

재일교포 세대간의 단절은 매우 심각하다.

1세대와 2~3세대들이 대화할 수 있는 학문의

장(場)이 없고,아직 연계가 없으므로 어떤 교류도 쉽게 이뤄질 분위기가 아니다.

경제적 지원이 없어 후계자발굴은 더욱 어려워진다.3인 이후의 문제는 우리와 동떨어진 문제인가. 최철주 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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