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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백지신탁제 내년 도입] 공직자 '돈' '자리' 중 택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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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고위 공직자의 주식 소유를 제한하기 위해 도입하는 백지신탁 제도의 골격이 10일 확정됐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정부의 개혁 의지 표명"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현재 재산 공개 대상자 가운데 5000만원 이상의 주식을 갖고 있는 공직자(국회의원 등 포함)는 394명이다.

◆'정경 분리 원칙'=허 장관은 "앞으로 공직자가 되려면 재산이나 공직 가운데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을 가진 기업가나 경영자는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공직자가 주식을 보유한 경우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백지신탁 제도는 공직자의 경제적 사익과 정부의 공익이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 제도의 도입은 행정부 공무원보다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허 장관은 "기업 총수가 정치에 참여해 아름답게 끝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부 지방의회의 경우 의원의 80%가 건설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며 "정경유착을 넘어 정경일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임기 중인 국회의원.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에 대해선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행자부 담당 공무원은 10일 오전까지만 해도 선출직도 예외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브리핑 도중 허 장관은 "소급 입법이라는 지적이 있어 선출직에 대해서는 현재의 임기 동안에 적용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 때문에 힘없는 임명직 공무원만 먼저 도마에 오르게 됐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채권 등은 빠져=백지신탁 대상은 주식뿐이며 부동산.채권은 빠졌다. 부동산은 주식에 비해 '이익 충돌'의 가능성이 낮은 데다 재산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경우 공직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게 이유다.

회사채의 경우 만기일에 약정된 이자를 받기 때문에 소유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정부는 스톡옵션도 신탁 대상에 추가할 방침이다.

고위공직자뿐 아니라 하위 직급의 공무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장유식 변호사는 "경제 부처 공무원은 직급에 관계없이 모두 신탁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미국 등에서 운용=정부가 도입키로 한 백지신탁 제도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총리.장관.주지사.주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은 재직 중엔 상장된 기업의 주식을 아예 거래할 수 없다. 공직자가 회사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경우 금융기관에 주식을 맡겨 회사의 회의나 정책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처분할 의무는 없다.

미국에서는 대통령.부통령.GS-15 등급(한국의 3~4급)이상의 공무원, 연방의회 의원 등은 윤리청이 공직과 이해가 충돌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주식을 백지신탁해야 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 등이 백지신탁을 했다.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당선 후 시 윤리위원회의 매각 권고를 받아들여 주식을 처분했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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