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방황하던 시골학교 꼴찌들 선생님 사랑에 기적 일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스윕(sweep), 스윕(sweep)~.”

3일 오전 11시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빙상경기장. 경북 의성공고 3학년 서영선(19)군이 빗자루를 쓸듯 스틱으로 얼음판을 문질러 둥글고 납작한 돌을 과녁(하우스)에 밀어 넣었다. 전국 남고부 컬링 결승전 경기였다. 연장전까지 세 시간 동안의 박빙 승부였지만 우승은 부산 대저고가 차지했다. 5대4. 1점 차 승부였다. 서군은 “졸업선물로 우승을 하고 싶었는데 긴장을 많이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괜찮아, 너희들이 챔피언이야.”

지난달 19일 경북 의성공고 컬링팀 선수들이 의성종합체육관 에서 김양식 지도교사 (앉아 있는 사람)와 연습을 하고 있다. [의성=김상선 기자]


결성 2년여 만에 전국 컬링대회 우승(고교부문)을 두 번 일궈낸 제자들을 보며 의성공고 김양식(46) 교사가 격려했다. 김 교사가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을 모아 컬링팀을 만든 것은 2006년 여름. 그 후 문제아들이 모범생이 되고 성적이 바닥이었던 학생이 1등을 하며 대학에 합격하는 마법 같은 ‘꼴찌들의 반란’이 벌어졌다.

◆학생들 마음을 열다=서군 등 컬링팀 5명은 2년 전까지 희망 없는 시골 공고생에 불과했다. 인문계도 못 간 ‘공돌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누구도 그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006년 3월. 국사 과목을 맡은 김 교사가 학교로 전근을 왔다. 마침 그해 초 학교 인근에 컬링 전용경기장이 생겼다. 김 교사는 푹푹 찌던 여름에 실내온도가 영하 5도인 컬링 경기장에 들어갔다가 무릎을 쳤다. “아이들에게 컬링을 시키면 엇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컬링을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컬링’이 생소했던 아이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김 교사 자신도 컬링을 배우는 처지였다. 그는 방과후 학교 밖에서 방황하던 학생들을 찾아가 동아리 ‘컬링팀’에 올 것을 설득했다. 팀 구성 중에도 캠코더로 국가대표 선수의 훈련 장면을 찍어 경기규칙과 훈련법을 배웠다.

◆꼴찌에서 1등으로=2006년 말 의성공고팀은 전국컬링대회에 처음 출전해 3위를 했다. 학생들은 “믿어지지 않았어요. 3위를 하다니”라며 울먹였다. 김 교사도 “봐라, 하니까 되잖아”라며 격려했다. 훈련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손수 밥을 차려 주고, 생일파티를 챙겨 주기도 했다. 구미시까지 차비가 없어 오도 가도 못하는 제자를 위해 직접 차를 몰아 통학을 시켜 주기도 했다. 이런 격려와 배려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성과는 2007년 11월 전국대회에서 나타났다. 의성공고 컬링팀이 출전 1년 만에 당당히 우승을 한 것이다. 훈련과 대회 참가 경비는 모두 김 교사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팀이 자리를 잡자 김 교사는 ▶학교 성적 50% 안에 들기 ▶결석하지 않기 ▶담배 피우지 않기 세 가지 약속을 지킬 것을 당부했다. 그러자 아이들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군은 하위권에 머물던 성적이 전교 1, 2등으로 상승했다. 국가 기능사 자격증도 5개나 따고 안동과학대에 합격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겨울유니버시아드 컬링 국가대표로도 선발됐다.

겨울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로 함께 뽑힌 성세현(19)군은 경북과학대 입학이 확정됐다. 성군은 “선생님처럼 제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전주·의성=이종찬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컬링=얼음판 위에서 둥글고 납작한 돌을 미끄러지게 해 ‘하우스’라는 표적에 넣는 경기. 팀당 8개, 총 16개의 돌을 던져 각 엔드 종료 후 하우스 중심에 더 가까이 있는 돌의 숫자를 합산해 두 팀의 승부를 가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