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 새 대통령 참모된 3인의 경제학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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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대권주자들의 연이은 TV토론회나 신문 인터뷰등을 보면'경제대통령'을 원하는 여론을 의식하며 대부분의 주자들이 경제관련 질문에 성의껏 답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다만 질문중에는 경제문제의 이해보다는 암기력을 시험하는 듯한 내용이 많아 불만스러웠다.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경제이론이나 경제통계를 달달외우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좋은 경제참모를 찾을때 대선주자들은 다음 우화를 음미해 보면 좋을 듯 싶다.

1997년12월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였습니다.때맞추어 동방(미국)에서 세사람의 경제학 박사가 축하차 이 나라를 찾았답니다.이들이 대통령을 만났을때 인사와 함께 내놓은 것은 유향과 물약이 아니라 자신들의 긴 이력서였습니다.세사람 모두 결함이 있는 학자들이었지만 대통령은 번지르한 학력.경력.발표논문에 현혹되어 임기동안 이들을 경제참모로 기용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먼저 발탁된 사람은 개혁파 박사였습니다.그는 대통령 앞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갈파한 다음 바로 행동으로 들어 갔습니다.금융.재정.조세.외환.노동.기업부문들을 개혁한다면서 시도 때도 없이 깜짝 놀랄만한 정책들을 발표했습니다.한동안 개혁정책에 박수를 보내던 국민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실을 무시한 정책들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되었고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깜짝쇼 때문에 경제는 놀라다 못해 얼어 붙고 말았습니다.이 박사의 숨겨진 별명이'도깨비상자'(Jack in box:상자를 열면 스프링 달린 귀신 얼굴이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게 함)라는 사실도 점차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실망한 대통령은 두번째 박사를 찾았습니다.새로 임명된 그는'경제살리기 백일계획'이라는 강력한 부양책을 들고 나왔습니다.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속으로는 이미 회복세에 들어섰던 경제는 부양책 때문에 곧 바로 과열기미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놀란 정부가 긴축쪽으로 돌아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읍니다.실기(失機)하는 일이 되풀이 되다 보니 경제는 청룡열차를 탄 것처럼 불황과 호황을 오르내리게 되었고 대통령과 국민들은 어지러워졌습니다.이 박사의 미국 별명은'샤워장의 바보(fool in shower')였답니다.

뜨거운 물꼭지를 틀고 나서 조금 기다려야 뜨거운 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때그때 이꼭지 저꼭지 틀어대다 샤워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이 사람이 물러날 때는'뒷북치는 사나이'라는 별명을 하나 더 얻게 되었습니다.

세번째 참모를 맞이할 즈음 대통령은 트루만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자들에 대해 식상해 있었습니다.그들은 정책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채 한편으로는 이런 면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저런 면이 있다는 식의 답변만 되풀이 해왔기 때문입다.

세번째 동방박사는 자신이'외팔이 경제학자(one-armed economist')임을 보이고 대통령의 고민을 해결해 드린다고 약속하면서 경제참모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의 쾌도난마식 논리가 우선은 그럴 듯 했습니다만 얼마안가 아집과 독단의 논리임이 밝혀지면서 정치적 내분과 경제적 혼란을 동시에 몰고 오고야 말았다고 합니다. <노성태 한화경제硏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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