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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슈포럼>예산 - 선거 바람타는 예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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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선거때마다 각종 공약이 난무하면서 나라살림이 뒤틀리고 있다.국민들 다수는 선심성 예산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번 대통령선거때도 반복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불황 여파로 세금이 잘 안걷혀 상황은 더욱 나쁘다.과거 어떤 선심성 예산이 끼어들어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만들었는지,올해도 선거바람으로부터 예산을 지켜낼 수 없는 것인지 짚어봐야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예산을 심의하는 정치권과 공약을 내놓을 대선주자들의 생각,정부의 입장,선진국의 사례등 예산관련 현안과 해결방안을 종합 정리하고 시민여론도 함께 들었다.

“이 사람 노태우(盧泰愚)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청주국제공항을 임기중에 완공하겠습니다.” 이 사업은 원래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 시절인 84년에 처음 입안됐다가 86년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이 난'죽은 사업'이었다.그랬던 것이 87년 12월 盧대통령후보의 청주 무심천변 유세장에서 되살아났다.

90년 6월 영종도 신공항계획이 발표되면서 청주국제공항은 또다시 백지화될 뻔 했으나 91년 3월 기초의회선거를 치르면서 무사했고,그해 5월 기어이 착공됐다.

시작만 하고 4년동안이나 질질 끌던 공사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95년 6.27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치르면서 지역개발 공약으로 다시 내세워 계획된지 13년만에야 완공됐다.그동안 아홉차례나 건설계획이 바뀌었으며 7백51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그러나 올 4월말 개항한 청주국제공항에는 국제선이 거의 취항하지 않고 있다.경제성이 없다는 항공사들의 외면 때문이다.

야당도 예외는 아니다.새만금 간척사업은 91년 김대중(金大中)당시 신민주연합당대표가 盧전대통령과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따낸 사업.재정경제원 관계자들은“새만금간척사업에 들어갈 돈이면 전북 김제.부안 일대 논을 사들여 공짜로 나눠줘도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92년 김영삼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농기계 반값 공급도 정부 예산을 멍들게한 예다.농기계값을 낮출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덜컥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내놓는 바람에 정부가 93~97년 1조5천억원이나 되는 돈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던 것. 있으나 마나한 淸州국제공항 문민정부들어 추진됐던 부산 가덕신항.광양항.아산항등 3대 신항만 개발사업은 'YS항.DJ항.JP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예다.

90년 일산에 짓기로 계획됐던 제2종합무역전시장은 93년 金대통령 취임후 정치논리에 따라 입지가 갑자기 부산으로 바뀌는 바람에 부지를 구하지 못해 4년동안 배정된 2백여억원의 예산이 은행금고에서 잠자고 있는 경우다.

정부예산이 선거바람에 휩쓸리는 수순은 정해져 있다.재경원 예산실이 대충 알아서 짰다해도 당정 협의과정에서 여당이 부풀리게 마련이고,국회에 나가면 야당 또한 가만있지 않는다.대통령선거가 있는 올해 예산을 짰던 지난해말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졌다.여당 요구로 막판에 7천6백32억원이나 불어났다.매년 줄어오던 관변단체 예산들이 유독 올해만 3배수준으로 급증한 것도 대표적인 선거용이다.

금리가 싼 영농.영어자금 지원금 증액은 정부가 한사코 반대했는데도 어쩔 수 없었던 예다.정부는 올해부터 수매자금을 봄에 선금으로 주기 때문에 저리의 영농.영어자금을 더 늘릴 필요가 없다고 버텼으나 결국 1천7백억원이나 증액됐다.

여당의원들은 정부의 얘기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대선이 있으니 어쩌겠느냐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고 정부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 *** 호남高速鐵 추진 말썽 우려 선거해 예산의 또다른 특징은 수십억원 규모의 각종 타당성 조사비가 많이 끼어드는 것이다.여기저기서 추진되는 지역 숙원사업에 대해 일단 타당성 조사비 명목으로 예산을 배정하기 때문이다.이렇게 시작한 수십억원이 얼마 안가 수백억~수천억원을 퍼부어도 모자라는'코끼리'로 변한다.

경부고속철도가 그처럼 말썽을 빚고 있는데도 호남.동서고속철도 설계비 2백억원이 올해 예산에 올라 있다.이것 역시 또하나의'코끼리'다. 정경민 기자

<사진설명>

5공때 정치적으로 사업이 결정된뒤 무려 13년이나 끌어온 청주국제공항이 지난 4월 드디어 개항됐으나 당초 우려했던대로 국제선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사진은 청주국제공항 계획이 처음 발표됐던 지난 84년 청주시내에 세워진 기념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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