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의 '스포츠댄스'와 음지의 '사교춤' 가깝고도 먼 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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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서기 20XX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댄스 국가대표 선발대회 공고가,

다급해진 조직위에 의해 전국 카바레에

나붙는다.20년 제비생활에 단련된 김모씨,미소를 짓는다.

“음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제야 양지에 드러낼 때가 됐군.흠흠흠.” 그러나 이런 장면의 실현 가능성은 없다.카바레

에서 흔히들 추는 지르박이나 블루스는 스포츠댄스 종목에 없기 때문이다.독일에 본부를 둔 국제댄스스포츠연맹(International Dance Sports Federation)같은 단체가 공식 인정하는 댄스 경기종목은 모두 10가지.'모던 스탠더드 댄스'부문에 왈츠.탱고.퀵스텝.폭스 트롯.비엔나 왈츠,'라틴 아메리칸 댄스'부문에 차차차.삼바.룸바.자이브.파소 도블레가 그것이다.

지르박의 원형은 30~40년대 미국에서

한창 유행했던 춤인 지터벅(jitterbug).

스윙 재즈음악을 반주로 가끔 곡예묘기 같은 것도 섞는 정력적이고 빠른 춤인 지터벅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군병사들에

의해 전세계에 보급됐다.우리나라도“6.25 전후로 미군들을 상대하던 여성들이 먼저

배운 지터벅이 일본식 발음을 거쳐

오늘날의 지르박이 됐다”고 한국무도강사협회 신길자회장은 설명한다.

바뀐 것은 이름만이 아니다.신회장은“지금의 지르박은 지터벅과 전혀 다른 춤”이라고 덧붙인다.따지고 보면 자이브도 미국의 스윙 댄스,즉 지터벅이 영국에 건너가 개량발전된 것.

그러나 이 역시 지르박과는 동작이나 스텝,

그리고 그 운명이 전혀 다르다.불륜의 이미지가 짙게 드리워진 지르박은 내내 음지에 머물러 있는 한국'사교춤'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국에 8백여개 무도학원이 있지만,거기서 춤 배운다고 떳떳이 나서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 현실 말이다.

대즐스 회원들의 말.“배우고 싶다고,가르쳐 달라고 많이들 그래요.친구들만 아니라 부모님도요.”“왜 자기는 하면서,남들이 하면 뭐라고 그러는 거죠? 우리 엄만 깜짝 놀라셨대요.옆집.윗집.아랫집 다 몰래 배웠다는 거 있죠?”기왕 배울 것,국적불명의 내수용'사교댄스'가 아닌'스포츠댄스'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고 배울 여건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18세기 후반 처음 출현한 왈츠도'남녀가 껴안다시피 하고 빙빙 도는 것이 도덕적으로 방종하다'고 비판을 받았다는 점.요즘 디스코테크에서 추듯 남녀 파트너가 별 신체접촉 없이 추는 춤의 등장은 서양사교춤 역사에서 그리 오래지 않는다.

50년대 얼굴을 마주 보고 추는 로큰롤 댄스의 등장과 함께 파트너와의 신체접촉은 급격히 줄어들고,60년대 트위스트는'춤을 리드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남자들을 해방시켜준 것으로까지 평가된다.

하지만 엉덩이를 뒤로 빼고 발바닥을 붙이고 온몸을 비틀며 흔드는 트위스트를 남녀 파트너 접촉이 없다고'도덕적으로 건전한 춤'이라 칭찬했다는 얘기는 전해지는 바 없다. 이후남 기자

<사진설명>

남녀가'짝'을 이뤄 추는 춤에 제자리를 찾아주려는 것은 대학생들만이 아니다.사진은 한국무도강사협회주최로 지난달 14일 서울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회 전국부부친선경연무도회에서 우승한 남주오.이영임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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