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홍콩'반환'이란 용어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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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홍콩이'영국-홍콩'에서'중국-홍콩'으로 회귀(回歸)한 날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속에서 위성방송의 생중계를 지켜보았다.이른바 제국주의(帝國主義)와 식민주의(植民主義)가 하나의 세리머니로 청산(淸算)되는 광경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종래의 공식대로라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청산은 투쟁이나 전쟁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새로운 형태로 청산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세리머니 광경을 금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대사건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금세기의 마지막이 오려면 아직도 한참인데 매스컴의 성급함은'마지막'이라고 서슴지 않고 강조하는 것이었다.이런 강조의 기법은 뉴스가치의 중대성에 비추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법은 두가지 점에서 삼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하나는 그러한 기법은 독자나 시청자에게 잘못된 인식과 관념을 심어줄 염려가 크다는 점이고,또 하나는 미래에 대한 예단은 그야말로 매스컴의 금기(禁忌)에 속하는 일이란 점이다.

솔직한 나의 심정을 말한다면 매스컴에서 강조한'마지막'이란 말에 어떤 거부감 같은 것을 느꼈다.그리고 마음속으로'금세기의 마지막 이벤트는 한반도의 통일이 됐으면'하는 바람을 뇌까리기까지 했다.우리 겨레가 피흘림 없이 세리머니로 통일을 이루는 것,그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것이고,그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세계사적인 동시에 민족사적인 과제라고 해야만 할 것같다.

*노력 보인 중앙일보 보도* 중앙일보는'중국-홍콩'이 이뤄진 날의 특집보도 뿐만 아니라 그 전후(前後)의 보도에 있어 질(質)과 양(量)에 걸쳐 노력의 흔적이 현저히 지면에 드러났다고 평가된다.이것은 국내 유수한 신문들과의 비교분석 뿐만 아니라 외국신문과의 비교분석에서도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보도내용의 비교분석을 통해 특히 세가지 점을 곱씹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첫째는 이른바'권위지(權威紙)'의 위상(位相)과 실체(實體)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우리나라의 유력한 신문들은 스스로'권위지'임을 표방하고 권위지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데,이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솔직히 지적한다면 신문이 권위를 내세우면 그 순간부터 신문도'썩는다'는 가능성을 배태한다는 점이다.그렇기 때문에 신문은 권위를 표방하기에 앞서 성실(誠實)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이번 홍콩관련 보도를 보면'권위'와'성실'이 대조를 이루는데 이런 점에서도 중앙일보의 노력이 평가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국제경쟁력 있는 신문을*

둘째는 신문의 국제경쟁력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대개 경쟁력이란 경제적 측면에서는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생각하기 쉬운데,신문의 경우 비가격(非價格)적인 경쟁력이 대종(大宗)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이것은 물론 신문의 질(質)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도 하지만 홍콩관련 보도에선 특히 외국 신문의 보도내지 특집 내용과 국내신문의 그것을 비교함으로써 우열(優劣)은 판별되게 마련이다.이런 측면에서 중앙일보는 자체평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임은 물론이고 국제경쟁력이 있는 신문을 지향하도록 더 한층 노력을 기울여야 할줄 안다.

셋째는 신문을 어떤 생각,어떤 철학,어떤 역사관으로 만드는가 하는 점이다.물론 신문이란 객관적인 사실보도를 해야 하므로'몰가치적(沒價値的)'이어야 한다는 입론(立論)이 크게 자리할 수 있다고 강조될 수도 있다.그러나 아무리 사실을 보도하는 것일지라도 기사의 크기를 결정하고 어떤 사진을 어떻게 취급하느냐의 문제는'몰가치'일 수가 없는 법이다.

따라서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일련의 가치관(價値觀)으로 표현될 수 있는'생각''철학''역사관'의 중요성이다.

홍콩보도만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용어(用語)선택이나 사진 선택에서 큰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게 현실적인 상황이다.가령 홍콩관련 보도에서 쓰여지고 있는 상징적인 용어는 대개 세가지로 집약된다.'반환(返還)''회귀''회수(回收)'가 그것이다. 여기서'반환'이란 말을 쓰는 경우는 영국을 비롯한 이른바 구미(歐美)제국 편에 서는 것이나 다름없다.식민지를 가졌던 처지에서는 당연히'반환'이기 때문이다.홍콩의 처지에서 보면'회귀'고,중국의 처지에선'회수'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신문에선 유감스럽게도 이런 용어 선택에 신중하지 못한 구석이 너무나 많이 드러났다.이런 것들이 생각이 짧아 일어난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고,그것이 만약 이른바 구미 편향적인 사고(思考)에서 나온 결과라면 심각한 일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유수한 신문들은'중국-홍콩'첫날을 장식하는 1면 머릿기사로 침통한 표정의 크리스 패튼 총독 사진을 실었다.사진 선택의 문제성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그 한장의 사진이 우리나라 언론계의 정신풍토(?)를 표출시킨 것이 아니기를 애써 믿고 싶다.

이규행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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