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테헤란밸리 이젠 '오락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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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로커스테크놀러지는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생활을 4년 만에 청산하고 서울 을지로로 사옥을 옮겼다. 이보다 한 달 전엔 브리지텍이 삼성동을 떠나 여의도로 이전했다. 두 회사는 기업용 통신망 시장 1, 2위 업체.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두 회사의 이전은 테헤란밸리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젠 엔터테인먼트밸리=순수 기술형 벤처업체들은 떠나가고, '황금알을 낳는다'는 게임업체.영화사 등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 속속 상륙하고 있다.

역삼역 서울벤처타운. 입주기업 명단을 보면 푸르덴셜.큐캐피탈 파트너스 등 금융기관이 대부분이다. 선릉역 근처 신도벤처타워도 상황은 비슷하다. 법정관리 중인 세원텔레콤을 빼면 비(非) 벤처들이 대부분이다. 역삼역 네거리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스타타워.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득세가 확연하다. 게임포털을 가진 NHN과 플래너스, 모바일 게임업체 그래텍이 입주해 있다.

넥슨은 선릉역 일대 4개 빌딩을 차지하고 있고, 엔씨소프트도 늘어나는 인원을 감당하기 위해 3개 빌딩을 차지하고 있다. 네오위즈는 아셈타워의 3개층을 쓰고 있다.

영화사들의 입주도 두드러진다. CJ엔터테인먼트와 CJ CGV가 최근 이곳으로 이사왔다. 쇼박스와 메가박스는 스타타워 바로 옆 한솔빌딩에, '말죽거리 잔혹사'를 제작한 싸이더스는 제일생명 네거리에 터를 잡았다.

◆경제흐름 반영=벤처 관계자들은 "테헤란밸리를 보면 경제흐름을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엔 견실한 순수 기술 벤처업체들마저 '탈(脫) 테헤란밸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와 한국정보공학이 강남을 떠나 여의도와 분당으로 떠났고, 다음은 제주도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인터파크.드림위즈.이니시스는 이미 오래전 서울 을지로.잠실 등지로 옮겼다.

인터넷기업협회 김성호 실장은 "업무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어 굳이 임대료가 비싼 테헤란밸리를 고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월 임대료는 대로변 기준으로 평당 최소 500만원으로 잠실.분당 등보다 많게는 평당 300만원 이상 비싸다.

반면 게임업체들이 몰리는 것에 대해 넥슨관계자는 "개발자들이 가까이서 교류하고 시장 동향도 교환하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유명 게임업체들은 임대료를 감당할 만큼 돈을 벌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했다. 영업이익률이 매출의 최고 50%까지 나오는 게임업계는 일반 벤처보다 수익성이 두배 이상 높다. 실제로 CCR.마리텔레콤.웹이엔지코리아.다날 등 이곳을 지키고 있는 IT 업체들은 순수 기술벤처라기보다는 대부분 게임.모바일 콘텐츠.음악 서비스 등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었다.

벤처창업경영연구소 김형주 소장은 "경제변화에 따라 테헤란밸리도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며 "수익률이 낮은 벤처들이 떠나 이제 특정지역을 놓고 벤처단지라고 일컬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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