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母性' 사회발전의 원동력 역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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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끝없는 희생과 사랑의 상징인 여성의'모성(母性)'은 추구해야 할 가치인가,벗어나야 할 굴레인가.제2회 여성주간을 맞아 여성계에서는 모성은 가정과 사회발전의 근원이라는 주장에 대해'모성찬양'이 여성에게 권리포기와 예속을 강요하는 도구로 이용돼 왔다는 논쟁이 일고 있다. 편집자

요즘 신문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희망인 자녀들이 왜 저렇게 학교폭력.성폭력에 가해자나 피해자가 돼야 하는가 하는 암울한 생각이 든다.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사회는'범죄와의 전쟁선포''학교폭력 추방운동''교육제도의 개혁'등을 부르짖고 있다.한편으로는 자녀들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모의 힘의 위대함에 호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후자의 주장에 귀기울여 부모의 힘의 근원인 모성을 생각해 본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모성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첫째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모성으로 인해 자기아이만 중요하고 잘되어야 한다는 이기주의 형태다.둘째는 아예 모성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학교와 가정이 단절된채 자녀들을 학교에 맡기고 자녀의 모든 것을 학교가 교육시켜 주리라 기대하나,우리의 학교현실은 입시준비하는 것만도 힘겨워 인성교육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그런데도 밀려난 인성교육이 모성의 힘으로 메워지지 않고 있다.

셋째는 모성과 여성의 자기발전이 상반된 개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이기적 모성이나 포기한 모성은 어쩌면 오랫동안 우리사회에 내재한 신비화된 모성 때문에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그리고 당당하게 여성이 모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한 결과일 수도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세번째와 연결해 모성을 검토해야만 한다.

그동안 우리사회가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모성을 지고(至高)한 가치로 내세우고,여성들이 이에만 전념하도록 한 면도 있었다.따라서 여성운동의 초기에는 미화된 모성에서 벗어나 자기성취에 도달한,모성을 거부한 여성들이 여성의 지위와 권리를 확보하고 성의 평등화를 실현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모성의 중요성과 가치를 소홀히 간주한 적은 없었으나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는 여성의 가치가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지는 못했다.따라서 일의 세계에 몰두한 여성들은 차라리 모성됨보다는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여건과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맞벌이부부에 대한 긍정적 시각,탁아시설의 확충,탁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가사노동의 기계화.컴퓨터화,외식산업의 발달,그리고 남성육아 휴직제도 도입등 일련의 변화는 이제 모성과 여성의 자아실현을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함께 묶어볼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모성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일 때 모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신비한 체험,정서적 기쁨,고단하고 경쟁적인 일터에서 돌아와 느끼는 편안함등은 한 인간의 발전과 성숙을 가져온다.더욱이 혼자서 몸도 제대로 못가누고,먹는 것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미성숙한 작은 생명을 지극한 모성으로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길러내는 것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이러한 소중한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을 존중하고,부성(父性)도 모성과 같은 비중으로 자녀양육과 교육에 있어서의 책임과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회관념이 정착돼야 한다.그렇게 될 때 모성을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것도,모성이 여성의 자기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잠재울 수 있고,나아가 모성의 힘이 우리사회를 덮고 있는 어두운 구름을 벗겨내는데 한몫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김태현 성신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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