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視界 1년의 홍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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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큰 사건의 현장에 있다는 것은 부담스럽다.1백50년만에 중국으로 돌아가는 홍콩을 현지에서 취재하는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7월1일 하룻밤에만 1백만명의 시민들이 빅토리아만 주변에 몰려 나와 20의 폭약을 터뜨리는 불꽃놀이에 취해 환성을 지르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도 홍콩반환의 결과와 홍콩의 장래에 회의적(懷疑的)이기가 어렵다.중국계 기자들은 프레스 센터에서 33분동안의 반환식을 대형 스크린으로 지켜보다가 유니언 잭이 내려지고 중국기와 새로운 홍콩행정특구의 기가 게양될 때 기자의 입장을 잠시 잊은듯 박수를 치면서 사건에 빠져 들어갔다.현장에서 홍콩사람들의 반응을 보는한 홍콩반환은 최고선(最高善)이었다.

일제(日帝)36년의 굴욕을 체험한 한국인들에게 시간적으로 그 다섯배에 가까운 식민통치를 벗어나는 것이 중국과 홍콩사람들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취향과 매너가 서양화.근대화돼 있는 홍콩의 젊은 기자들이 찰스 왕세자와 패튼 총독의 약간 부자연스러운 표정에 몇차례 조롱조의 웃음을 터뜨리는 것도 파토스의 세계에서는 이해가 간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불꽃과 축제의 음악이 멎고 환호하던 군중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의 로고스의 세계에서는 각종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지금 하드적으로 중국이 홍콩을 흡수하지만 20년,30년 뒤엔 개의 꼬리가 몸통을 휘두른다는 서양속담 같이 홍콩이 소프트적으로 중국을 지배할 것인가.홍콩은'트로이의 목마'인가.인민해방군이 그렇게 서둘러 홍콩에 입성한 것은 어떤 불길한 조짐인가. 홍콩의 중국인들이 보이는 흥미로운 반응 한가지는 그들 대부분이 의식적으로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것같다는 것이다.중국은 반드시 한나라 두체제 원칙을 지키고 홍콩에 고도의 자치를 허용하겠다는 장쩌민(江澤民)의 말은 진지한 공약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사태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겐 한가지 선택 밖에 없다.늦기 전에 홍콩을 떠나는 것이다.그러나 해외이주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가진 자들만의 특권이다.

홍콩이 중국의 특별행정구가 된 다음날 두가지 해프닝이 일어났다.하나는 경찰관 5명이 사임한 사건이고,다른 하나는 중국의 홍콩에서 일어난 최초의 민주화운동 진영의 데모가 평화롭게 끝난 것이다.

이날 경찰은 베토벤의'교향곡 5번'을 볼륨껏 틀어 데모대의 구호에 대항했다.민주화운동 진영에서는 경찰의 그런 방식도 불법이라고 항의할만큼 홍콩경찰은 민주적이다.그러나 5명의 경찰관은 중국의 홍콩에선 민주적으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임무 수행이 불가능할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사임했다.그들의 사임은 앞으로 시민의 권리위축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겐 큰 제방(堤防)의 개미구멍 같이 보였다.

중국과 홍콩당국은 우선 2만4천명의 경찰병력으론 진압할 수 없을 정도의 데모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경찰로 안되면 인민해방군의 지원을 받아야 하고 군대출동은 홍콩의 위상에 치명적이다.

이날은 새벽에 4천명의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진주한 날이다.전날 저녁에는 5백9명이 선발대로 들어왔다.

중국이 홍콩을'중국화'할 것인가,홍콩이 중국을'홍콩화'할 것인가는 시간과의 경쟁같이 보인다.덩샤오핑(鄧小平)의 실용주의노선을 따르는 장쩌민 일파가 건재하는동안 중국의 시장경제가 홍콩에'예속'되는 것과 어떤 예기치 않은 사태의 발전으로 중국이 홍콩에 개입해 국제금융센터요 자유무역항인 홍콩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중의 어느 쪽이 먼저 올 것인가.열광하는 군중속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내년 5월 입법회의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는가,6월4일 천안문사태 기념일을 어떻게 넘기는가를 기다려 봐야 큰 방향이 잡힐 것같다.

홍콩에서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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