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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대신 정부가 지폐 찍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일본 자민당이 경기 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아닌 정부가 직접 찍는 정부지폐를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3일 보도했다.

정부지폐는 중앙은행이 고유 권한을 갖고 발행하는 화폐 이외에 정부가 독자적으로 발행하는 돈이어서 정부 재정에도 잡히지 않는다. 생김새도 기존에 통용되는 화폐와 다르다. 다른 나라 화폐와 교환할 수는 없지만 자국 내에서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물론 중앙은행이 발행한 돈과 바꿀 수도 있다.

이 방안이 나온 것은 경기 부양책으로 다음 달 중 전 국민에게 1인당 1만2000엔씩 지급하기로 한 정액급부금 정책이 “재원 낭비”라며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어서다. 늦어도 9월 이전에 치러질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자민당으로선 다급한 나머지 획기적인 카드로 정부지폐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이 1일 TV 토론에서 이 방안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자 자민당 내에서는 상반기 중 100조 엔(약 1500조원) 규모로 찍어 국민 1인당 50만~60만 엔(750만~900만원)을 나눠주자는 방안도 나돌고 있다. 자민당에 조언해주고 있는 경제학 교수 사이에서도 1인당 20만 엔씩 배포하면 적정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산도 나오고 있다.

정권 당국자 사이에서는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자민당 간사장은 “이것이 가능하다면 매년 30조 엔씩 찍어 (830조 엔에 달하는) 국가채무도 30년이면 갚을 수 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관방장관은 “인플레이션과 엔화 가치 하락도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메이지(明治)유신 때 이야기”라며 일축했다. 정부지폐는 메이지 정부가 1882년 처음 발행한 데 이어 러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때도 군비 조달을 위해 ‘군표(軍票)’ 형태로 발행된 바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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