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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 성수대교 붕괴현장서 부상자 구한 의경 11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1994년 10월21일,경찰의 날.서울경찰청 제3기동대 40중대 소속 최충환의경등 11명은 우수중대원으로 뽑혀 표창을 받기 위해 12인승 베스타승합차를 타고 아침 일찍 강남의 숙소를 떠나 시상식장으로 향했다.앞에는 운전을 맡은 김희석의경과 가장 고참이었던 최의경,그리고 이경재의경이 자리를 잡았다.

삽상한 아침 강바람을 가르며 성수대교를 건너가던중 김의경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다리가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오전7시40분이었다.동시에 다리 상판과 함께 이들의 승합차는 강물위로 떨어졌으나 순간적인 일이어서 뒷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8명이 무슨 일인지 채 느낄 겨를도 없었다.성수대교가 붕괴됐다.승합차의 뒷바퀴가 끊어진 상판 뒷부분에 가까스로 걸려 의경들은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

“반대차선에서 달려오던 16번 시내버스가 한바퀴를 돌면서 우리가 떨어진 바로 앞쪽에 전복돼 처참하게 부서지고,승객들이 피투성이로 뒤엉킨 것을 목격하고서야 비로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지요.” 현재 창원지역의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최충환(25)씨는 사고 당시를 돌이켜보면서도 의연하다.

“누군가'사람이 떠내려간다'고 소리쳤고,우리는 혁대를 이어 구명밧줄을 만들었어요.

김희석.조재현.강준식.김천웅등 수영에 익숙한 네명이 강물에 뛰어들었고 나머지는 전복된 버스 안에서 10명을 구출해냈어요.강물에서도 6명을 구출했어요.” 강원도동해시에서 당구장을 경영하고 있는 이경재(25)씨는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모두들 죽어가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데에서 만큼은 일사불란했다고 회고한다.

“그때는 정말 우리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하지만 강물에서 허우적대며 쓸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무조건 뛰어들었지요.”김희석(25)씨는 사고후 모범의경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몇차례 방송에도 출연했으나 자신이 한 일은 대수롭지 않았다고 겸손해한다.김씨는 지난해에 경찰 공채시험에 응시했으나 아깝게 탈락했다.

11명의 의경은 대부분 훌륭한 경찰관이 되겠다고 했으나 제대후 경찰관이 된 사람은 이주연(25)씨 한사람 뿐이다.

“출혈이 심해 위태해 보이는 부상자를 밖으로 옮겨놓고 상태를 살펴보려는데 그분은'나는 괜찮으니 빨리 가서 다른 사람을 보살피라'며 뿌리쳤습니다.나중에 돌아와 보니 숨져있더군요.저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못다한 삶을 대신해 봉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씨는 그뒤 막연히 생각해오던 경찰에 확신을 갖고 95년 4월 제대하면서 곧바로 경찰관시험준비에 들어가 지난해 5월 합격,경찰학교를 마치고 남양주경찰서 와부파출소에 근무중이다.

아픈 기억을 덮고 성수대교는 3일 개통된다.개통을 앞두고 성수대교 현장을 찾은 이들에게서 사고의 후유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규홍 기자

<사진설명>

성수대교 현장을 찾은 김희석.최충환.이경재씨 (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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