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흉악범 유전자은행’ 도입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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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이전에도 특수절도·폭력 등 9건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경찰이 밝혔다. 그의 살인 행각이 드러난 것은 점퍼에 묻어 있던 핏자국 속의 DNA 덕분이었다. 핏자국의 주인이 지난해 11월 실종된 주부 김모(48)씨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만약 강호순의 유전자형이 진작에 데이터베이스화돼 있었다면 더 일찍 검거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랬다면 지난해 12월 군포시에서 스물한 살 여대생이 살해당하는 비극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진국들이 이미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는 ‘범죄자 유전자 은행’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지지부진이다. 1994년 법무부와 경찰이 비슷한 법안을 각각 마련한 이래 15년째 논란만 거듭하고 있다. 인권을 침해할 우려 때문이다. 2006년에는 ‘유전자 감식정보 수집·관리법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됐으나 인권단체 등의 반발로 흐지부지됐다. 현재 법무부가 유전자 수집 대상과 방법을 보다 엄격히 다듬은 새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유전자 정보는 유출되거나 악용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과 인권침해를 부를 수 있다. 특정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에서 차별받거나 회사가 고용을 기피하는 사례를 외국 일로만 치부할 것도 아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내무부와 경찰이 축적한 DNA 데이터베이스의 4분의 1가량이 무고한 시민으로 드러나 큰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강호순의 경우를 보면 법안 도입 자체를 언제까지나 미룰 일은 아니다.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나 연쇄살인 행각을 시급히 막을 필요성을 무시해선 안 된다. 잠재적 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다만, 인권 측면을 고려해 대상이 되는 범죄 유형은 살인·강도·강간·유괴·아동성폭행 등 중범죄로 제한해야 마땅하다. 차별 논란을 일으킬 것이 뻔한 인종·성(性)·질병 등의 정보는 처음부터 수집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다.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엄격히 관리하고, 특히 범죄해결 용도 외에는 일절 활용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규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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