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의욕 죽이는 늑장 특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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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소 신발업체 한리산업의 趙모 사장은 95년 통풍이 되면서도 물이 새지 않는 아이디어 상품인'통풍 신발'을 개발,특허를 기다리다 개발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지난 2월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 회사는 2년여 동안 연매출의 20%인 1억5천만원을 들여 개발한 시제품이 남대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됐다'싶어 특허를 기다리던중 특수기술을 모방한 신발 밑창이 절반 값에 시장에 쏟아져 나오자 문을 닫은 것. 기업들이 막대한 개발비를 투입하는등 큰 위험부담을 안고 갖은 고생끝에 개발한 신기술들이 평균 3년 이상(37개월) 걸리는'늑장 특허행정'에 걸려 좌초하고,이를 탄생시킨 기업들이 문을 닫는 사례가 적지않은 것이다.

29일 변리사 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제품수명이 1년인 컴퓨터등 전기.전자.통신분야는 최근 특허출원이 몰려 심사가 4~5년까지 걸리는 경우도 적지않은 실정이다.

변리사 김용식(金溶植)씨는“기업들이 느끼는 특허심사기간 체감지수는 37개월이라는 통계수치보다 훨씬 심각하다”며“특허 심사중 망해버리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특허.실용신안 등록요건을 갖췄으나 유행이 지나 가치가 없어졌다는 이유등으로 등록을 포기하는 비율이 95년의 경우 10.1%에 달했다.

이처럼 기술개발의 발목을 잡는'늑장 특허'는 77년부터 96년까지 특허.실용신안 출원건수가 14.8배 늘었으나 심사관 수는 5.3배 증가에 그치는등 심사인력이 출원증가를 따라가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이에따라 94년 평균 35.5개월 걸렸던 특허.실용신안 심사처리기간이 95년에는 36.4개월,96년에는 37개월로 오히려 점점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 기간이 미국의 경우는 19개월,일본은 24개월,중국은 26개월에 그치고 있다.국가경쟁력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특허청은 이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자 올해 심사관수를 지난해 2백23명에서 3백57명으로 늘렸지만 급증하는 출원량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허청은 7월1일부터 특허.실용신안에 대해 심사후 등록부터 해주고 이의신청을 받는'사후 이의신청제'를 도입할 방침이나 이렇게 해도 등록기간은 2~3개월 정도 단축되는데 그칠 뿐이라는 지적이다.

또 실용신안의 경우 출원과 동시에 등록해주는'실용신안 무심사제'도 임시국회 상정을 앞두고 국회가 표류하고 있는데다 권리보호의 안정성이 없다는 반대의견이 많아 답보상태에 빠졌다.

경기대 산업재산권학과의 이원재(李源載)교수는“심사관 증원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전문연구기관에 선행기술 조사와 첨단분야 심사를 맡겨 심사관은 최종 판단에만 전념토록 하는'위탁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영렬.양영유.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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