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무림>제2부 4. 6龍연합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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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다루(茶樓)는 늘 이 시간이면 사람들로 북적댔다.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로 두 조손(祖孫)이 모습을 드러냈다.앞못보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어렵게 걸음을 옮겼다.

댕기머리의 앙증맞은 손녀가 할아버지의 손을 이끌어 자리에 앉혔다.잠시 좌중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리자 손녀딸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요즘 무림천하가 어지럽다면서요? 이유가 뭐예요? 할아버지는 뭐든지 알고 계시잖아요.”“허허,제법 어려운 질문이구나.한마디로 말하면 회룡(會龍)과 공삼거사의 싸움 때문이지.” 다루안 군중들의 귀가 솔깃해졌다.

“회룡은 신한국방 방주인 회창객을 가리키고 공삼거사는 현 무림지존을 말씀하시는건 줄은 알겠어요.두사람은 재여무림의 두 기둥이잖아요.그런데 두 사람이 왜 싸우죠? 서로 합심해서 차기 무림지존을 탄생시키겠다고 약속했다면서요.”“회룡은 공삼이 못미더워 혼자 힘으로 차기 무림지존이 되려 하고 공삼은 그런 회창객에게 몽땅 넘기려니 왠지 아까워서 자꾸 딴생각을 해서 그렇지.”“아하,그래서 공삼의 직계수하들인 정발협(正發俠)이 회창객을 못잡아먹어 으르렁거리는군요.공삼거사가 회창객말고 딴 용(龍)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걸 알고.하긴 신한국방엔 널린게 용이라니까요.”“얘야,그건 그리 간단치 않단다.공삼은 회창객말고 다른 용을 후계자로 지명할 수가 없단다.”“왜요?”“회창객의 무공이 워낙 막강한데다 세력도 무시할 수 없어서 그렇지.공삼이 다른 용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해봐라,당장 회창객이 그 무시무시한 판관필을 들고 공삼을 공격할 거다.아무리 공삼이 현 무림지존이라지만 이미 지는 해라,떠오르는 태양같은 회창객의 공격을 간단히 물리칠 수는 없지.물리친다 해도 신한국방은 크게 상처를 입고 말겠지.그러면 결국 누가 이득을 볼까?”“당연히 재야무림의 총수인 대중검자나 종필노사죠.”“그래,맞았다.우리 손녀딸 똑똑하구나.그러면 공삼은 어떻게 해야 할까?”“음-,회창객을 후계자로 삼기도 싫고 안삼을 수도 없고-.아이,머리 아파.잘 모르겠어요.” 여기서 두 조손은 말을 끊었다.그러자 이미 두 사람의 탁자로 몰려든 군중들중 누군가가“뜸들이지 말고 얘길 좀 해보쇼.”하며 맹로(盲老:눈먼 노인)를 채근했다.

“아,매설자(賣說子:얘기를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가 공짜로 얘기하는 것 봤소.옜소.이제 계속 말을 해보시구려.” 그들중 한 사람이 나서 황금 한조각을 손녀에게 쥐어주었다.“할아버지,한냥어치.”손녀가 소리치자 노인의 입이 열렸다.

“가만히 지켜보는 거야.정발협이 이길지 회창객이 이길지 지켜보다 이긴 사람 손을 들어주면 되는 거지.”“에이-.그게 뭐예요?언제까지 지켜만 보면 누구한테도 환영을 못받을 것 아니에요?그래서야 공삼이 얻는 게 없잖아요.”“그렇지 않다.이미 공삼은 큰것 두개를 얻었단다.”“그게 뭔데요?”“후계자 싸움에만 관심이 몰리다보니 공삼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무력(武曆)92년 무림지존대회 황금문제가 쑥 들어갔다는 게 첫번째 소득이지.두번째는 그래서 공삼에게 무림을 재편할 힘과 기회가 다시 생기고 있다는 거다.정발협과 회창객 누구도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는 때를 틈타.”“어느 편도 못들고 지켜만 본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죠?”“공삼의 입은 침묵해야 하나 그의 수족은 그렇지 않다.공삼이 서역으로 가면서 광일소자를 무림관할 특사로 임명한 걸 잘 생각해보려무나.광일소자는 와룡 수성객의 친구란다.바로 이룡제룡(以龍制龍),무공입신(入神)의 공삼다운 고단수 수법이지.”“그럼 도대체 정발협과 회창객의 싸움은 언제 끝나나요?”“좋은 질문이구나.신한국방 이백오십삼개 당(堂)의 당주(堂主)중 사할 이상을 어느 한편이 장악할 때 끝난다.그래서 이 싸움을 사할싸움이라고 한단다.정발협도 회창객도 아직은 사할을 굴복시키지 못했다는 뜻이지.그러나 곧 어느 한쪽이 당주의 사할을 장악하게 될게다.”“그게 언젠데요?”“일곱번째달 초사흘이 가기 전이다.공삼이 서역에서 돌아오고 6마리 용과 정발협의 합종.연횡이 어떤 형태로든 모양이 갖춰질 때.”“누가 이기죠?”“참 어려운 질문이구나.이대로가면 회창객이 이긴다.회창객은 이미 그 막강한 무공으로 사할 가까운 당주들을 일일이 굴복시켰다.그중에는 정발협 소속 고수도 상당수 있단다.공삼의 부재중 정발협이 회창객에게 방주자리에서 물러나라고 맹공을 퍼부은 것도 그 때문이지.회창객에게 더 시간을 줬다간 반드시 패할 지경이었으니.그런 사정은 나머지 6마리 용도 마찬가지다.그러나 정발협이 6마리 용과 일치단결하면 회창객이 진다.”“6마리 용들이 서로 합치는 게 가능할까요?”“글쎄,그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인유각로 용유각심(人有各路 龍有各心:사람마다 길이 다르고 용(龍)마다 뜻이 다르다)이라.” ◇6룡고성(六龍高聲)이 천지를 진동하다 찬 종검은 흡족했다.이제 회창객은 거꾸러질 것이다.신한국방 방주자리를 이용해 독행대도(獨行大道:혼자서 큰길을 가다)했지만 바로 그 방주자리가 자신의 목을 죌 것이다.그가 진작에 방주직을 내놓고 싸웠으면 오히려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방주직을 내놓으면 6룡세(六龍勢)에 밀려 패배를 자인한 꼴이 되고 내놓지 않으면 6룡과 정발협의 연합을 막을 길이 없다.진퇴양난. 이른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세란 이를 말함이니.엉거주춤 내릴 수도 달릴 수도 없는 회창객의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6룡 모두의 즐거움이었다.결국 회창객은 조만간 방주직을 내놓고 한걸음 물러설수 밖에 없으리라.“일단 우리 6룡이 모두 출전하되 연합했다는 걸 만천하에 공표합시다.회창객이 끝내 방주직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중 후계자 선발 1차 비무에서 최고로 잘 싸운 사람에게 모두 힘을 몰아주기로 했다고.” 서로 자신이 맹주가 되려고 싸우다가 성사되지 못할 거라던 6룡연합은 이런 극적 합의를 통해 결국 이루어 질 것이다.각자 출전한다.그리고 1차 비무를 마친다.1차 비무에서 가장 잘 싸운 자에게 나머지 5룡이 가세한다.그리고 그 뒤엔 정발협이 있다.천하의 누구라도 정발협이 가세한 6룡세와 싸워 이길 수는 없다.회창객은 판관필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패하리라. ◇회창객의 출사표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오 늘 미뤄왔던 대망의 출사표를 던졌건만 회창객의 심사는 그리 밝지 못했다.본래 예정대로라면 이맘때쯤 싸움은 벌써 끝나 있어야 했다.출사표를 늦춘 것도 그래서였다.그는 본래 출정식을 승리 자축연으로 만들려고 했었다.그럴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6룡연합 때문이니 정발협 때문이니 세간에선 떠들어댔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게 공삼때문이었다.천하의 못믿을 자 공삼.끝까지 발목을 잡고 늘어지다니. 원종검.삼재소자.석재공등 공삼의 측근인 문민삼자(文民三子)와 그 일당들이'무림대계'라며 같잖은 계략을 몇달 전부터 추진하고 있음을 회창객이 알게 된 건 최근 일이었다.회창객은 공삼이 이를 묵인하고 있는 게 화가 났다.면전에서는“믿을 사람은 당신뿐이야”를 연발해 놓고 뒤로는 딴 속셈을 부려.무림대계란 게 알고보면 두사람의 무림지존이 서로 견제하며 무림을 다스리게 한다는 이두집정제(二頭執政制)가 목표였다.

말이 그럴듯해 양두통치지 실상은 회창객 자신을 따돌리고 변형내각공을 익히겠다는 수작이었다.공삼 본인은 무림지존의 권세를 한껏 누려놓고 이제 와서 자신의 후사만을 걱정해 내각공이라니.백번 양보해 그런 계략을 꾸미는 것쯤은 봐줄 수 있다고 치자.어차피 내가 반대하면 안될테니까. 서역으로 떠나면서 내겐 한마디 상의도 없이 광일소자를 중용한 건 뭐냔 말이다.그자가 수성객의 사람이란 건 삼척동자도 안다.게다가 광일소자,그자는 공들여 내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무림정보부의 인맥들을 색출해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위인이었다.회창객 자신의 손발을 묶어 놓겠다는 의도가 눈에 보였다.공삼이 그러다 보니 덩달아 정발협이니 6룡이니가 설치는 것 아닌가.“정의를 발휘하는 협객모임이라고(正發俠),웃기지 말라고 해.천하의 건달들 같으니.차라리 정발협(正拔狹:정의를 뿌리뽑는 소인배)이 어울리겠다.” 정발협,특히 그 수뇌부인 석재공이며 청원검을 생각하면 정나미가 떨어지는 회창객이었다.방주직을 내놓으라고.6룡이 그렇게 떠들어대는 건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정발협,제깟 놈들이 뭔데 설치냔 말이다.뭐 방주직을 이용해 당주들을 굴복시키는 건 무림의 법도에 어긋난다고?계속 법도를 어지럽히면 당신만은 주군(主君) 선택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고금(古今)무림사(武林史)에 수하가 주인을 선택하겠다고 나선 건 이자들밖에 없을 터였다.

물론 정발협의 진짜 속셈이 뭔지 회창객은 모르는 바 아니었다.방주직에서 물러나라는 건 핑계에 불과했다.공삼도 방주직을 가진 채 지난 무림지존대회에서 싸워 이겼다.그때 공삼을 주군으로 모셨던 자들이 누군가.바로 지금 정발협의 인물들 아닌가.그자들은 내가 무림지존이 되면 자신들이 설자리가 없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누누이 그렇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지만 정발협 수뇌부는 아예 들은 척도 안했다.이유도 안다.

지난 무림지존대회때 재여무림 후계자를 놓고 자신들과 맞서 싸웠던 그 민정단 고수들을 내가 수하로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장강(長江)의 품은 넉넉해 강남의 모든 강물을 싸안는다'는 말도 모르는 작자들 같으니. 6룡연합에 정발협이라-.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바람이 되리라.큰 바람이 되리라.그래서 제각각 뽐내지만 강풍이 몰아치면 바람 따라 고개를 숙이는 게 갈대임을 알게해 주리라.

하나면 된다.6마리 용중 필요한 하나만 내 사람으로 만들면 된다.

그리고 그 한마리 용은 이미 자신과 수차례에 걸쳐 밀약을 맺은 터였다.그는

최후의 순간 6룡연합을 버리고 내게 오리라.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리라.공삼의 무림대계도,수성객의 변형내각공도,인제거사의

세대교체공도,찬종검의 독불검도 모두 물거품이 되리라.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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