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목적 ‘이달곤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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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행정안전부 장관 후임 인선이 돌고 돌아 한나라당 이달곤(사진) 의원으로 결론 났다. 이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미묘한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초기 인선 때만 해도 청와대 측의 기류는 정치인 배제론이 우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희태 대표와의 청와대 정례 회동에서도 “이번에 정치인 입각은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류화선 파주시장 카드였다. 하지만 검증 과정 등에서 여의치 않은 흐름이 생겼다. 청와대의 적임자 찾기가 진통을 거듭하자 당 측에서 집요하게 요구해온 당 출신 인사 입각론이 다시 저울 위에 올랐다. 1·19 개각에서 소외된 당의 정서가 청와대에 고스란히 전달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정무라인을 중심으로 안상수·허태열·김무성 의원 등이 거론된 이유다. 특히 2월 임시국회 쟁점법안 처리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운 친박 인사를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은 물론이고 청와대 정무라인 등에서도 고개를 들었다. 그 때문에 김 의원 등의 이름은 끝까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30일 “친박 인사 입각의 경우 박 전 대표 측과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아 끝내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친이 또는 친박 인사 기용이 물 건너가면서 계파 색이 엷은 이 의원이 부상했다. 이 의원은 정정길 비서실장과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과 같은 하버드대 정책대학원 박사 출신이다. 인수위 때부터 이 의원과 함께 일한 당 인사는 “보름 전부터 청와대 일각에서 이달곤 의원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안다”며 “다른 후보들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의원으로 흐름이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 카드로 내정된 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모양새 갖추기에 신경 썼다.

한나라당의 추천을 청와대가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내정 발표도 박 대표가 30일 오후 1시30분에 이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했다. 그런 뒤 청와대가 공식 수용 의사를 밝히는 수순을 밟았다. 청와대가 여당에 장관 추천권을 주는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 후보자 내정 사실을 먼저 발표한 뒤 사후에 당에 통보해 당의 불만을 샀던 지난 18일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그 대신 한나라당에선 최고위원회의 결정으로 비례대표인 이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좋다는 결정을 했다. 이 의원도 이를 수용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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