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국제형사법 ‘황무지’를 일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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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제형사증거법
백기봉 지음, 박영사, 633쪽, 4만5000원

 국제형사법의 씨앗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근근 명맥을 유지해왔으나, 로마조약에 터잡아 2002년에 설립된 영구적 상설법원인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적용하는 실체법과 절차법에 관해서는 선례가 희소하고 연구가 빈약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황무지에 값진 비료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서술 방식은 국제형사재판소의 모든 것을 서술한 교과서와 같은 면이 있지만 국제형사재판 규범 중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형사증거법리에 대한 본격적 연구성과이기도 하다.

국제형사재판에서의 증거법의 올바른 이해와 적용은 국제법상의 형사사법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관건이 된다. 책은 로마조약이 기본적으로 영미식의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하고 공판 전후의 절차는 당사자 대립원칙에 입각하여 엄격한 무죄추정 하에 진행되는 점, 특히 증거활동의 능동적 수행을 위해서는 당사자의 절차상 평등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검사의 증거가 공판 전에 피고에게 개시(disclose) 되어야만 피고도 충분한 방어를 할 수 있는 핵심적 문제를 명쾌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영미법계에 기울어진 증거채택의 원칙과 기준, 배제되는 증거들, 그리고 공판절차에서의 증인, 서증 및 실물증거, 절차에 참가한 피해자의 지위와 권한, 피해자가 절차에서 수행할 수 있는 증거활동의 범위 등 난삽한 국제형사증거절차를, 조약 및 판례를 면밀히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지은이는 로마조약상의 증거법 논의를 우리나라 형사법의 현황과 대비하여 장래의 개선점을 지적하고 있다.

본서는 아주 보기 드문 전문적 학술적 저술로서 새로 떠오르는 국제형사법분야를 널리 알리는 역할은 물론 이미 제정된 로마조약의 국내이행입법의 해석과 적용에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 상고심재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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