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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재계새별>15. 대한펄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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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깨끗한 나라를 만들자'. 30여년간 종이만들기에 전념해온 대한펄프는'깨끗함'을 유달리 강조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진실한 마음이 깨끗한 나라를 만듭니다'라는 글이 쓰여있는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닌다.전화를 받을때도'깨끗한 나라 입니다'라고 응답한다.지난달에는'깨끗한 나라'라는 상품명의 화장지를 출시하기도 했다.업종 이미지가 깨끗한 것과 떼놓을 수 없는데다 깨끗한 제품,깨끗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이같은 사풍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펄프의 역사는 66년 창업주인 고(故) 최화식(崔華植)사장이 경기도 의정부에 판지공장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그는 60년 3명의 동업자들과 함께 한국특수제지를 인수하면서 직접 제지업계로 뛰어들었다가 61년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사장에서 물러나면서 제지업계를 한때 떠났다.

그러나 종이와의 인연을 잊지못해 대한팔프공업(대한펄프의 전신)을 세우게 된 것이다.

대한펄프에서는 회사이름과 달리 펄프가 생산되지 않는다.

당초에는 전량 외국에서 수입되던 펄프를 국산화하기 위해 펄프생산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설립준비단계에서 당시 국내 사정상 펄프 생산이 여의치않다는 판단아래 산업용 포장재인 백판지로 생산품목을 바꿨다.

75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홍콩 등지에 백판지수출을 시작했으며 78년에는 종이컵 원지제품을 개발,품목 다각화에 나섰다.

85년에는 화장지 생산업체인 금강제지를 인수한뒤 화장지.생리대.기저귀등 위생용품 분야로 사업분야를 넓혀왔다.

앞으로는'깨끗한 나라 만들기' 캠페인을 펼치는 회사답게 자연분해필름등 환경보전형 포장재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대한펄프는 현재 제지업계 전체의 외형기준 랭킹은 7~8위권이나 종이컵의 경우 연산 2만4천으로 국내 생산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또 백판지 분야는 업계 1~2위,위생용품 분야는 3위권이나 이중 백판지쪽은 증설이 완료되는 99년초에는 국내 최대업체가 된다는 계획이다.

대한펄프의 지난해 매출은 2천3백33억원.6개 계열사를 합친 지난해 그룹매출은 2천7백63억원을 기록했다.

대한펄프에도 위기가 여러차례 있었다.

90년 대전공장에 불이 나 공장이 전소되면서 화장지 생산라인을 청주공장으로 옮겼으며,지난해엔 불황에 펄프값 상승등 악재가 겹치며 창사이래 첫 적자를 기록해야 했다.

대한펄프는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회사다.

창업주인 고 최화식사장은 80년 공장에서 회의를 주재하다 작고했다.경영권을 이어받은 최병민(崔炳敏.45)현 사장은 1주일에 한차례씩 반드시 청주공장에서 이사회를 연다.매주 월요일의 판촉여직원회의등에는 직접 참석해 현장 의견을 듣고 있다.

崔사장은 78년 대한펄프 비서실장직을 맡으면서 경영수업을 시작한뒤 80년 부친의 갑작스런 타계로 약관 28세때 회사를 물려받았다.

崔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미국 남가주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창업때부터 내려온 사훈인'진실경영'을 경영모토로 삼고 있다.

75년 업계 처음으로 기업을 공개하고 95년부터 전임직원 대상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투명한 경영을 강조하는 2대에 걸친 경영관의 소산이다.대한펄프는 자체사옥이 없이 서울 충무로의 신조양빌딩 3개층에 세들어 살고 있다.

崔사장이 조만간 구축하려는 원격화상회의시스템도 대리점에서 공장까지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투명한 경영방침의 일환이다.

이같은 분위기속에서도 대한펄프는 경쟁을 최우선의 인사원칙으로 삼고 있다.이때문에 자기개발을 위한 교육이 상당히 강조되고 있다.

전 임직원이 연간 교육계획서를 개인별 카드로 작성해야 하며 회사측은 상.하반기별로 교육실적을 점검해 이를 인사고과와 연봉산정에 반영하고 있다.

대한펄프의 주요 의사결정은 매주 한차례씩 열리는 이사회에서 이뤄진다.계열사 사장들은 매월 한차례씩 이 이사회에 참석해 현안을 논의한다.

대한펄프는 또 매년 상.하반기 두차례에 걸쳐 전 계열사의 부서장급이상이 전부 모이는 결산회의를 세미나 형식으로 갖고 있다.

대한펄프는 아직까지 외형이 작아 그룹이란 말을 쓰지않고 있다.그룹내 회사도 계열사가 아닌 관계사로 불린다.

崔사장은“그룹 명칭이나 회장 직함은 내가 아닌 직원들이 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한다.종업원들이 열심히 일해 그룹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회사를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때까지는 이 말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고 최화식사장은 3남2녀를 두었으나 이중 장남인 최병욱(崔炳旭.49)씨는 무역과 관계된 개인사업을 하고 있고 사위들도 변호사.의사로 그룹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그룹 경영엔 차남인 최병민사장과 3남인 최병준(崔炳俊)대한무선통신사장(40)만이 참여하고 있다.

최병준 사장은 형과 같은 경기고.서울대 출신으로 대한펄프의 상무.부사장을 거쳐 현재 대한펄프내 운송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최병준사장은 이와 함께 자신이 사장을 맡고 있는 대한무선통신과 충남TRS를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동아교통의 이문영(李文榮)대표는 고졸출신으로 70년 대한펄프에 평사원으로 입사한뒤 최고경영자가 된 그룹내 입지전적인 인물로 대한펄프의 의정부.청주공장장등을 거친 관리통이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시내의 물류기지를 겨냥해 설립한 부동산임대업체인 동아교통을 맡고 있다.

대한펄프는 세무.법률.마케팅.기술등 분야에 6명의 고문을 두고 있다.이들은 전직 고위관료등 명망있는 인사가 아닌 세무사.변호사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대한펄프는 특히 제지업 외길을 달려왔기 때문에'어려울 때 도와줄 계열사가 없다'는 것이 그룹내 취약점으로 지적돼왔다.

대한펄프는 이때문에 최근 사업다각화에 적극 나서 지난해 청주 민방 컨소시엄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의정부.동두천지역의 케이블TV 운영권자로 선정돼 방송사업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그룹의 주력은 계속 제지업이 될 전망이다.

최병민사장은“문화수준이 높아질수록 종이의 수요는 더욱 늘어나게 마련”이라며“제지업 한길만 달려온 기업답게 앞으로도 제지업종을 더욱 키울 계획”이라고 말한다.

대한펄프는 지난3월 창립31주년을 맞아 2000년까지 총 2천3백15억원을 투자해 매출규모 6천억원의 종합제지메이커로의 성장을 목표로 한'비전21'계획을 세웠다.2000년 그룹 전체 매출목표는 7천5백억원이다.

최종 목표는 세계 선두의 종합 제지메이커로 발돋움하는 것. 이를 위해선 세계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중국 공장에 이어 남미에 화장지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이 사업이 매듭지어지면 브라질.베네수엘라.인도네시아등에서 해외조림.펄프가공 분야에도 진출할 방침이다.

대한펄프가 앞으로 시장개방으로 어려워진 국내경영여건을 어떻게 극복하고 해외진출에 성공하느냐에 이 회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홍병기 기자 <다음은 우방그룹편>

<사진설명>

대한펄프의 대표적 생산품중 하나인 미용티슈 '소프티'를 만드는 자동 공정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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