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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귀향 농민공 1000만 명 ‘실업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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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춘절(春節:중국 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이던 20일 오전.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의 대표적 인력시장이 있는 밍궁 루의 분위기는 스산했다. 새벽부터 일자리를 못 찾은 농민공(農民工·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잡담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광둥(廣東)성 둥관(東菅)의 한 가구 제조업체에서 잡역부로 일하다 지난해 11월 실직하고 이곳에 막일감을 찾으러 나왔다는 농민공 리(李·30)는 “며칠째 일감을 못 찾고 있어 먹고 살 걱정이 태산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0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 기차역 인근의 밍궁루 인력시장. 일감이 없어 무료해진 농민공들이 마오쩌둥 사진을 펼쳐 놓고 한담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중국의 실물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면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나갔던 농민공들이 대거 실직한 뒤 속속 귀향했다.

마젠탕(馬建堂) 중국 국무원 국가통계국장은 최근 “1억2000만 명의 농민공 중 25%(3000만 명)가 귀향했으며 이 중 20%(약 600만 명)가 실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언론들은 실직 농민공이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9일 오후 정저우에서 차를 타고 황허(黃河)를 건너 북쪽으로 100㎞가량 달려 신샹(新鄕)시 훠자(獲嘉)현에 도착했다. 인구 40만 명의 훠자현은 신샹에서도 농민공을 가장 많이 외지로 송출해온 곳이다. 지난해에만 13만여 명(누계)이 외지로 일을 찾아 떠났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농민공 외지 송출은 사실상 중단되고 귀향자들이 속출했다.

농민공 송출업을 해온 화(華)씨는 지난 연말부터 개점휴업 상태다. 그는 “동부 연안 지역에 문닫는 공장이 급증하면서 외지로 나가려는 농민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훠자현의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외지에서 일하다 실직해 짐꾸러미를 챙겨 귀향하는 농민공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다. 선전의 한 신발 업체에서 일하던 자오(趙·23)는 “당분간 도시로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춘절 기간에 푹 쉬면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 현 소재지에서 의류 판매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취직보다는 소규모 자영업 점포를 운영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처럼 농민공들이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몰려들자 최근 훠자현 정부 관계자들은 농민공 취업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훠자현 노동국은 ‘농민공 교육 취업 서비스’를 마련했다. 취업을 희망하는 농민공에게 무료로 교육을 시켜 주고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것이다.

훠자현 노동국 관계자는 “아직은 간간이 전화 문의만 해오는 단계”라면서 “장기간 외지에서 일해온 농민공들의 춘절 연휴가 끝나는 2월 중순부터 취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농민공이 고향으로 몰려오는 것은 농촌에는 위기이자 기회”라며 “외지에서 교육받고 경험을 쌓은 노동자를 잘 활용하면 농촌 발전에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그는 “적극적으로 창업하려는 농민공에게는 소액대출을 활성화해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허난성과 농민공=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선 허난성은 ‘농업 대성(大省)’으로 불린다. 동시에 가장 많은 농민공을 외지로 송출해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허난성은 중앙 정부가 농민공 동향을 가늠할 때 가장 주시하는 곳이다. 허난성 출신 농민공들은 그동안 광둥·저장(浙江)·장쑤(江蘇)·베이징(北京) 등지에서 일해 오다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경제 잡지 차이징(財經)에 따르면 허난성 출신 실직 농민공은 377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중국 대륙의 중심에 위치해 중원(中原)으로 불리는 허난성의 철도 요충인 정저우 기차역을 통해 대거 귀향했다.

허난성의 귀향 농민공 재취업 대책의 성공 여부는 중국 사회 안정과 혼란을 판가름할 수도 있는 중요한 가늠자 역할을 하고 있다.

정저우·훠자현(허난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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