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다물정신'과 韓민족 공동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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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구려를 일으킨 주몽이 나라를 세운 후 연호를 정하기를'다물'이라 했다.고조선 이래로 한민족(韓民族)이 다스렸던 광대한 영토를 다시 찾는다는 뜻이었다.그래서'다물정신'은 고구려의 건국정신이 됐다.고구려 역사에서 광개토대왕이 다물정신을 크게 구현했던 왕이었다.고구려가 허망하게 망한 이후 다물정신은 실종됐었으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 단체로'다물단'이 있었다 하고,요즘에도'다물회'란 모임이 있어 민족혼을 깨우치는 운동을 펴고 있다는 소문이다.

미래로 밖으로 눈 돌려야 지난달에는 어느 정당의 대표께서 전당대회장에서 연설하기를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다시 구현하기 싶다는 뜻의 연설을 했다고도 한다.모르긴 하나'다물정신'을 잇는'민족경영'을 실현하는 정치가가 되고 싶다는 뜻일 게다.요즘 들어 한민족공동체운동을 펼치자는 글이 지상에도 자주 등장한다.말하자면'다물정신'이 소리없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분단조국이 된지도 이미 50년 세월에 우리는 너무나 좁은 땅에 갇혀 살고 있다.땅이 좁으니 생각도 좁아져 작은 일들에 시비와 다툼이 그칠 날 없다.옛 조상님들의 호연지기와 굳센 기상은 사라지고 소인배들의 패거리 짓기에 백성들은 서글픔을 속으로만 삼키고 있다.이제 우리는 잠을 깨야 한다.잠을 깨고 눈을 미래로,밖으로 돌려야 한다.다가오는 21세기를 보아야 하고,태평양 넓은 바다를 보고,중국.러시아의 넓은 대륙을 보아야 한다.그 넓은 땅에서 민족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이른바 세계경영에 도전해야 한다.

중국땅에는 동북 3성을 중심으로 2백만명의 동포들이 살고 있고,러시아에는 연해주와 중앙아시아에 50만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일본에 1백만명의 재일교포가 있고,미국땅에 1백50만명의 코리안들이 살고 있다.남한에 4천4백만명이 있고 북한에 2천3백만명이 있다.모두가'다물정신'으로 광대한 대륙을 경영하려 했던 조상님들의 후손인 한 핏줄이다.

지금에 와서 국토를 넓히자는 생각이 아니다.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이 각자가 속한 국가에 충실한 국민으로 남아 있으되 문화로,경제로,가슴으로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이른바 한민족공동체다.이제 국경은 낮아지고 이념과 체제는 무너져 가고 있다.다가오는 시대는 경제가 중요하고,문화가 중요하고,창조적인 생각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그래서 세계에 흩어진 단군의 후예들은 하나의 문화권, 하나의 경제권으로 결속돼 안으로 민족의 질을 높이고,밖으로 평화세계 건설에 쓰임받자는 것이다.

하나의 문화.경제圈으로 내가 속한 공동체마을인 두레마을은 중국 옌볜(延邊)땅에 공동체마을을 세웠다.2백만평에 이르는 넓은 골짜기를 중국정부로부터 50년간 빌렸다.그곳에 경제공동체.문화공동체를 세워 조그마하지만 알차고 값진 공동체마을을 세우려는 것이다.그 골짜기는 지난날 독립군들이 진을 쳤던 자리다.일본군에 맞서 피 흘리고 뼈를 묻은 자리다.이제 세월이 지난 지금 독립군들의 손자뻘 되는 우리들이 그 땅으로 들어가는 거다.그곳에 멋진 공동체마을을 세워 한국인의 개척정신과 창조정신을 보여주려는 계획이다.거기서 길러진 옥수수를 북한 형제들에게 보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불쌍한 북녘 형제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마을이 된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을까. 일전에 한총련 소속의 한 젊은이를 만났을 때 말했었다.“여보게 젊은이,지금이 어느 때인데 쇠파이프를 휘두르는가.지금이 어느 때인데 주체사상을 들먹거리는가.진정 북한 동포를 돕고자 하거든 중국 두레마을로 가세.거기서 땀 흘려 농사지어 북한으로 보내세”하고 말했더니 젊은이는 눈동자에 빛을 발하며 말했다.“사생결단하고 가겠습니다.가서 농사지어 북한 동포를 돕겠습니다.”김진홍 목사.두레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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