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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톡쏘기>3. 황소개구리의 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국민들의 생각이 얕아도 한참 얕습니다.내 이야기 잘 듣고 큰일 터진 다음에 똥마려운 강아지 울타리 꿰어가듯이 화닥닥 내닫지 말고 오뉴월 귀뚜라미처럼 미리 알아채고 대처하십시오. 나를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만 알고 열을 모르는 미욱함입니다.내가 생각하는 진짜 생태계 파괴는 이런 것입니다.나하고'ㅎ'자 돌림이 같은 한 소설가의'해산 가는 길'이라는 소설 속에 이 땅 생태계 파괴의 원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한 정승에게 예쁜 이팔청춘의 무남독녀가 있었다.그 딸을 흉악한 산적들이 납치하여 가버렸다.정승은 그 산적들을 잡아들이기 위하여 포졸들을 풀었다.한데 도둑을 잡겠다고 산으로 들어간 포졸들은 살아서 되돌아 나온 자가 없었다.마침내 다음과 같은 방을 팔도에 내걸었다.

'산적들에게서 내 딸을 구해다 준 자는 사위로 삼을 것이며 드높은 벼슬을 내리고 재산을 반분해 주겠다'.사흘 뒤에 딸이 대문간에 나타났다.딸의 치맛자락을 개 한마리가 물고 있었다.송아지만큼 컸고,검정 털과 갈색 털과 잿빛 털이 섞여 있고,네 다리의 길이가 각각 석자 반쯤이나 되었고,눈알이 연한 치자빛깔이었다.개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담은 채 정승을 향해 꼬리를 흔들어댔다.정승은 딸의 생환을 자축하는 잔치를 벌였다.개에게는 쇠고기를 푸짐하게 대접하고,개 임자한테 벼슬을 내리고 얼마쯤의 재산을 주겠다는 방을 붙였다.그러나 개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개는 딸의 방문 앞에서 낑낑거리며 꼬리를 흔들어대기만 했다.

'개가 딸과의 동침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이 무슨 해괴망측하고 망신스러운 일인가'. 정승은 날고 기는 무사들을 시켜 그 개를 죽이도록 했다.개는 비호처럼 허공을 날아올라 무사들을 물어 죽여버렸다.어찌할 수 없이 그 개를 딸의 방으로 들여보냈다.몇달 뒤에 딸에게 태기가 있었다.딸이 낳은 아기는 별종이었다.다리는 길고 머리칼과 눈알의 색깔이 치자색과 갈잎색깔의 중간쯤이고,코는 메부리처럼 드높고,혀를 꼬부려 말을 하고…그것이 바로 지금 서양사람들의 시조였다…. 요즘 나는 앞으로 발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남한땅의 진짜 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밤잠을 설치곤 합니다.

얼마전에 나하고'황'자 돌림자가 같은 북한의 모씨가 남한으로 온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북한의 중소기업 사장 한 사람이 망명을 한 것도 아니고,기껏 망해가는 회사의 비서 한사람쯤이 도망쳐온 것인데 왜 그렇게 온 나라 안이 떠들썩했습니까? 내가 보기로,이중간첩이 아닌가 의심이 가는 그 사람,앞으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북한에서 온 황모씨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했노라'하고 이용해먹기 위해 데려온 것은 아닌가요? 이 못된 황소개구리 놈들,지금 무슨 망발을 하는 거냐 하고 우리들을 전멸시키려 들더라도 나는 조금도 겁내지 않을 것입니다.왜냐하면 한국민들의 생각 깊지못한 것 가운데 기막히게 다행스럽고도 존경스러운 것 하나가 있기 때문입니다.식용으로 들여온 우리 황소개구리의 효능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재래용 개구리는 물론 물뱀.꽃뱀.독사.능사.구렁이새끼들까지도 모두 잡아먹고 사는 우리 몸뚱이는 세상의 그 어떤 양서류보다 한국 남자들의 정력에 좋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한국민들은 그것을 생각지 못하고 있으니까.흐흐흐흐.정력에 좋다고 하기만 하면 온 세상의 곰 쓸개.곰 발바닥.지렁이.코브라.굼벵이.불개미.들쥐.재래종 개구리들을 다 구해다가 먹으면서 왜 우리 황소개구리들은 외면하는 것인지,그것이 눈물나올 정도로 고맙구만요.

글=한승원 소설가

<사진설명>

한승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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