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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값 3000원도 되는데 등록금은 왜 카드 안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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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 주부 손영미(50·서울 면목동)씨는 다음 달 초 내야 할 대학생 자녀들의 등록금 때문에 걱정이다. 공대에 다니는 아들의 등록금으로 470만원, 식품영양학을 전공하는 딸의 등록금으로 450만원 등 모두 920만원의 등록금을 지불해야 한다. 손씨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만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형편에 등록금을 한 번에 납부하기는 정말 힘들다”며 “동네 갈비집도 카드 할부가 되는데 한 학기에 4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현금으로 한꺼번에 내라는 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2 디자이너로 일하며 홍익대 광고홍보대학원에 다니는 이진호(28)씨는 매달 월급에서 몇 십만원씩 떼어 ‘등록금 저축’을 한다. 한 학기에 4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시간을 쪼개고, 월급을 아껴 공부하는 직장인들에게 대학원 학비를 일시불 현금으로만 내라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다음 달 이 대학원을 졸업하는 박자연(28·여·회사원)씨는 박사 과정 진학을 미루기로 했다. 매번 복잡한 절차를 밟아 연 7.3%의 학자금 대출을 받고, 이를 갚는 과정이 부담스러워서다. 박씨는 “일단은 돈을 모아야 박사과정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3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휴학 중인 백재영(24)씨는 요즘 아르바이트에 매달려 있다. 3월 복학을 앞두고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과외뿐 아니라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한 금융회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아버지의 월급으론 등록금 납부가 거의 불가능해 스스로 벌어 등록금을 대려 한다. 하지만 344만6000원에 이르는 등록금은 벅차다. 지금까지 200만원 정도를 모았다. 백씨는 “다른 상품을 구입할 때처럼 6개월 할부로 신용카드 결제한 뒤 돈을 나눠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며 “절차도 복잡하고 이자도 높은 편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학자금 대출을 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용카드로 3000원짜리 커피를 사 마시고, 택시도 타며,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내는 세상이다. 그러나 유독 대학 등록금만은 카드가 통하지 않는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현금으로 한꺼번에 내야 한다. 상당수 대학들이 3%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 효과가 있어 수수료 부담에는 반대한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전국 396개 대학(전문대 이상) 중 등록금을 카드로 납부할 수 있는 곳은 60개 대학(15%)에 불과했다. 이 중 4년제 일반 대학은 전북대를 포함한 15곳(3.8%)에 그쳤다.

한규훈 숙명여대 홍보실장(홍보광고학과 교수)은 “지난해 등록금 신용카드 납부를 추진하다 수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카드사와의 협상이 결렬됐다”며 “당분간 등록금 카드 납부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해 대학 등록금을 700만원으로 상정할 경우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21만원(3%)의 카드 수수료가 발생한다. 서울 소재 대학들은 연간 200억~600억원을 등록금 수입으로 잡고 있다. 대학에서 수수료를 부담하면 12억~36억원의 손실이 생기는 셈이다. 신한카드 이재영 브랜드전략팀 과장은 “수수료를 최저 수준으로 낮춘다 해도 1.5% 정도는 받아야 하는데 대학들이 수수료 전액 면제를 요구하고 있어 합의가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선 카드 납부 보편화=미국에서는 신용카드로 등록금을 납부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미 컬럼비아대 치과대학원에 유학 중인 조영석(27)씨는 “신용카드 납부는 가능하지만 학생이 몇 십만원가량의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UCLA대 마샤 러브웰 재무담당은 본지에 보낸 e-메일에서 “현재 학생들이 신용카드로 등록금을 납부할 경우 학교가 수수료 전액을 부담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 박물관관리학과 학생 쉬지아윈(22·여)은 “푸단대 재학생은 모두 등록금 납입용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있으며, 학생 수수료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학교-은행-카드사 간 협약 필요=전문가들은 대학과 은행, 카드사가 파트너십을 맺고 수수료를 인하하는 ‘전북대 모델’을 차선책으로 꼽는다. 전북대는 2003년부터 주거래 은행인 전북은행과 등록금 납부 독점 계약을 하는 대신 신용카드 3개월 무이자 납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결제 수수료와 할부 이자는 은행이 부담한다. 전북은행 서형섭 카드사업부 차장은 “주거래 은행인 대학과 학생들에 대한 장기 고객 확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신용카드 납부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성서대의 경우 카드 결제 수수료와 할부 이자까지도 학교에서 내준다. 이강동 한국성서대 홍보 담당은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고 학부모들의 어려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학교에서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택·김기환·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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