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편회오리>下. 정부.한국은행 금융개혁안 攻防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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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융개혁법안을 둘러싼 정부와 한국은행의 공방이'강행'과'저지'로 맞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알려진대로 이번 사태는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중앙은행제도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대한 한은의 반발에서 비롯됐다.정부발표의 골자는 통화신용정책의 주도권을 금융통화위원회와 한은에 넘겨주되 감독기능은 떼내 총리실 산하에 신설하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통합시킨다는 것. 그러나 이같은 정부안은 단순한 정책변화가 아니라 3개 기관의 위상과 자리에 관한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결코 정부의 정책결정에 노조가 나설 입장은 아니나,때가 때인 만큼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합법 여부를 떠나 문제가 확산될 경우 표에 매달린 국회가 모른척할 수 없을테고,그렇게 되면 정부안을 무산시킬수 있을 것으로 한은을 비롯한 다른 감독기관 직원들은 기대하는 것이다.

어쨌든 양측의 입장이 워낙 팽팽히 맞서다 보니 정부안의 내용이나 입법방향에 대한 차분한 토론은 뒷전으로 밀려난채 서로 강수를 연발하는 상황이다.특히 정부는 사법처리 방침까지 밝혀가며 다각도로 한은등을 압박하고 있다.금융권의 이번 반발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차원에서 단호한 입장이다.

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가진 대책회의가 정부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강인섭(姜仁燮)정무.김인호(金仁浩)경제수석등 5명의 수석비서관들이 가진 회의에서는 한은의 반발을“대안제시 차원이 아닌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행동”(文鐘洙민정수석)으로 규정,한은이 파업등 불법행동을 벌일 경우 전원 사법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한은의'약점'인 봉급문제등 방만한 경영에 대해 감사원을 동원,집중감사를 벌이겠다는 입장도 밝히고 있다.사실 한은이나 증권.보험감독원의 봉급문제는 3개 감독기관의'통폐합 반대'주장의 명분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재경원이 파악한 3개 감독원 직원들의 급여수준은 대체로 같은 연조의 공무원 봉급의 두배가량 된다.30년 근속한 은감원 국장의 월급(지급액 기준.세전)이 약 6백60만원,증감원은 7백60만원,보감원은 7백70만원선에 달한다. 〈표 참조〉 김인호 경제수석은“대통령실도 국회에서 예산심의를 꼼꼼히 받는데,한은은 정부와 같은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인건비를 포함한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받지않는 유일한 기관”이라면서 감독기관 통합에 대한 반발을'기득권 보호'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한은 직원들은 일전불사의 분위기다.봉급문제는 설명을 할수록 정부의 의도에 말려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감안,대응하지 않되 증감원.보감원및 민주노총등과의 연대투쟁은 계속할 예정이다.20일로 예정된 3개 감독기관 노조들의 신한국당 당사앞 시위나 민주노총등과의 연대투쟁등'실력행사'와 독자적인 법안제출,정부안에 합의해준 이경식(李經植)총재 퇴진 서명운동등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것.18일 열린 전직원 비상총회에서 정부안의 국회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결의했고 자금마련을 위해 직급별로 돈을 거두는등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은행들로 구성된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이 뜻밖에도 정부의 개혁안을 지지하고 나서서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같은 노조라해도 감독을 하는 입장과 받는 입장이 결정적인 순간에 갈라서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 황의각(黃義珏)교수는“어려운 경제현실을 감안해 경제운용에 가장 책임이 큰 정부와 한은이 모두 냉정을 찾아야할 것”이라면서“충분한 여론수렴을 통해 제2의 노동법파동같은 사태를 막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보균.손병수 기자

<사진설명>

한은 직원들은 18일 정오 비상총회를 갖고 정부의 중앙은행제도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저지하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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