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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고민과해법>下. 영국 - 과감한 민영화로 탄력성 회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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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새로 출범한 영국 노동당정부는 경제에 관한한'황금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지난 79년 이래 18년을 계속 집권했던 보수당이 각종 규제의 대폭적 완화와 대대적 민영화,그리고 무엇보다 탄력적 노동시장 유지로 경제를 안정시키고 산업경쟁력을 높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성과는 숫자상으로도 입증된다.지난 5월 영국의 실업률은 5.8%에 머물렀다.독일.프랑스가 11~12%대의 실업률로 허덕이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92~96년간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1% 이상(실질기준)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5% 전후에 머무른 독일.프랑스는 물론이고 최근 호황을 구가하는 미국도 능가하는,서방선진7개국(G7)중 최고수준이다.이와 함께 근로자 평균소득 증가율도 연 5%에 달하는등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음에도 인플레이션은 2.6%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영국의 변화는 노조의 약화에서도 드러난다.영국 근로자의 노조 가입률은 최근 31.3%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그러나 이는 1년전과 비교하면 무려 5.7%포인트,조합원수로 1백만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며 지난 60년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특히 젊은이들의 노조 가입률이 낮아지고 있으며,20세 미만의 경우 6%에 불과하다.

정부규제의 철폐와 민영화,탄력적 노동시장은 정부의 적극적 투자유치 노력과 합쳐져 영국을 매력적인 외국인투자 대상으로 만들었다.

현재 영국에 투자한 외국기업은 8천여개에 이르며,미국과 일본은 유럽연합(EU)에 대한 투자의 40%를 영국에 집중하고 있다.

노동당정부의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이같은 호조건을 그대로 유지해 나간다는 입장이다.시장경제의 자율성을 인정하고,민영화한 기업들의 재국유화를 포기하는등 기업활동의 자율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노동당은 94년 토니 블레어가 당수로 취임한후 당 강령 제4조 주요기업의 국유화 방침을 삭제,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한바 있다.

이런 바탕에서 노동당정부는 복지제도의 전면적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시혜(施惠) 중심의 복지가 아니라 일자리가 없는 계층에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복지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거둬 나눠준다'는 과거 노동당 정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영국은 연간 GDP의 13%인 9백70억파운드를 복지예산으로 지출하며,이중에서 80억파운드를 실업수당으로 쓴다.

그러나 이같은 예산이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통계에 따르면 영국 전체인구 5천8백만명 가운데 1백만명 이상의 성인이 지금까지 한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블레어 총리는 최근 한 연설에서 정부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실업대책이 영국에'무직(無職)계급'을 양산했다고 비판하고,'일.기능.책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즉 정부는 일할 수 있도록 기회와 기능을 제공하고 그 다음부터는 근로자 스스로 책임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노동당은 선거공약으로 18~25세 젊은이 25만명에 대한 직업교육을 내걸었다.공공기관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직업교육을 실시하고,이들을 채용한 기업에 6개월동안 주당 60파운드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엔 약 30억파운드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이를 이른바'윈드폴 택스(횡재세)'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윈드폴 택스란 국영기업의 민영화로 큰 이익을 본 기업들에 물리는 일종의 특별세로 브리티시텔레컴(BT)이나 공항관리운영회사인 BAA,그밖에 전기및 가스회사들이 과세 대상기업이다.브라운 장관은 50억~1백억파운드를 징수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나 이들 회사는'윈드폴 택스'가 불법이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복지제도의 개념을 바꾸려는 노동당정부의 시도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미지수다.하지만 영국이 보여주는 변화의 방향은 세계경제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으며 그것이 영국이 지금 누리는 경제적 활황의 바탕이 됐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런던=정우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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