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도입.인센티브제등 북한 개혁에 자본주의 냄새 물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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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꽁꽁 닫혀 있던 폐쇄사회,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쳐 있는 지구상 마지막 사회주의 체제 북한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가 더욱 화끈한 자본주의지대로 탈바꿈하는가 하면 농민시장이 전국적으로 번성하고 있다.공동생산방식의 집단농장도 변질되고 있다.과연 이같은 변화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향후 어떻게 될지 종합적으로 점검해본다.

북한 경제계에 일고 있는 변화 움직임은 분명 개혁과 개방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식량난.경제난 극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새로운 정책들엔

자본주의 냄새가 풍기거나 최소한 기존의 사회주의 방식을 수정.보완하는

내용들이어서 눈길을 끈다.

◇영농개혁=북한은 만성적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분조관리제 개선을

더욱 강조하는 한편 '주체농법'의 폐쇄 자세를 탈피,외국지원및 기술협력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분조관리제 개선:협동농장의 최소 영농단위인 분조를 종래의

8~10가구에서 3~4가구로 축소.재편성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분조평가제를 강화,목표를 초과한 생산분은 분조가 처분권을 갖도록 한 것이

골자다.기존의 인센티브제 도입에서 크게 벗어난 분조축소 조치는

협동농장의 공동생산.공동분배의 틀을 깨는 것이란 점에서 기존 사회주의

방식에서 변질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외국과의 영농기술협력:지난해 6월부터 미국의 카터센터로부터 영농구조

개선과 화학비료 증산,강냉이의 다모작,밀.보리.쌀의 이모작등 영농개혁을

지원받고 있다.

지난 3월엔 대만당국의 농업기술 전문가를 초빙,영농기술을 제공받고 4월엔

일본의 농업기술자 대표단을 불러 종자개량과 영농법등에 관해

논의했다.5월초에는 미국의 워싱턴주등 4개 주정부 관리들로 구성된

지원단이 농업및 곡물 수송방법등을 지도하기 위해 방북했다.

북한의 영농개혁 의지는 간접경로를 통해 우리 기업및 정부에까지

협조요청을 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4월 흑룡강민족개발총공사(총사장 최수진)를 통해 남포직할시의 농업자재및

기술제공을 우리정부에 요청했고,5월에는 정무원 농업위원회 명의로

재미교포 김양일(동일그룹 회장)씨에게 외국과 북한의 농산물 계약재배및

수출입에 관한 권한등을 위임,남한기업에 손짓을 보냈다.

'먹는 문제'만큼은 자급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북한이 농업분야의 대외협력에

본격 나서는 것 자체가 큰 정책변화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진.선봉지대 개방확대=북한은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의

개방.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11개항의 새 조치를 최근

유엔개발계획(UNDP)에 통보했다.화폐개혁,자영업 허용,독립채산제

시행,국제자유시장 개설,인프라 정비등이 새 조치의 주내용이다. 〈본지

6월2일자 1면,4일자 2면,16일자 1면 참조〉 나진.선봉지대 개방 확대가

성공하는 징후를 보이면 북한은 다른 해안 거점도시들을 개방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외부사조의 유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마당 확산:북한당국이 인정하는 시장은 열흘장이지만 식량배급소와

국영상점의 마비로 장마당이 우후죽순격으로 늘고 있다.농민시장이 거의

일일장으로 탈바꿈하고 도시 언저리에는 곳곳에 장마당이 형성되고

있다.거래품목도 술.담배.기계설비등 불법품목 외에는 대체로 허용되고 있다.

장마당의 확산은 식량획득을 위한 여행통제 완화조치와 함께 활발한

정보유통을 수반할 것이다.북한당국은 식량난으로 시작된 사회의 유동성

증대와 기존의 통제체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광자원 개발:북한은 올들어 국제관광회의에도 참석하는등 외국관광객

유치에 안간힘이다.자연자원을 최대한 활용,부족한 외화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다.

백두산-금강산-묘향산-칠보산을 축으로 관광개발에 주력해온 북한은

최근에는 구월산.정방산등의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국경지대의 관광코스

개발에도 적극적이다.중국과의 합의아래 단둥(丹東)~신의주를 축으로 하는

1~3일 관광코스가 올초부터 시작됐고 두만강의 새별~온성군등의 1~3일

관광코스도 갖춰져 있다.

이와함께 백두산 천지의 북한쪽 지역을 한국인등 외국관광객들에게

무비자로 개방하는 방안도 마련중이고 중국.일본등 제3국 선박으로 한국

동해안의 한 지역과 청진.나진지역을 잇는 관광코스도 논의중이다.

최근에는 일조(日朝)교류회를 통해 평양~서울 동시방문,금강산

송이버섯따기,평양~개성(또는 묘향산)사이클링,대동강 뱃놀이등의

관광상품으로 일본 관광객을 모집하고 있다.

◇항로개설:북한은 새 항로개설에도 열심이어서 빗장열기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인천~남포,부산~나진을 잇는 기존 정기항로는 올초부터 수송량의 급감으로

해운사들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취항중단과 축소가 잇따랐다.그러나 북한은

최근 중국측에 중국선박을 이용한 나진.선봉~부산간의 여객선항로 개설을

제의했으며 나진~속초간 카페리호 항로개설이 남북한과 중국간에

협의되기도 했다.

남북한간에는 지난해부터 상호 영공개방을 위한 협상이 진행중이다.북한

상공의 외국 항공기 운항은 지난해 12월부터 가능해진 상태다.그밖에

나진~니가타(新潟)항 정기선 운항이 일본과 협의되고 있고

평양~나진~옌지(延吉)를 연결하는 헬기항로도 곧 개설될

예정이다.관광자원의 개발이나 항로개설 확대조치에 따라 외부 방문객의

증가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선 북한당국이 개혁.개방을 확대하면서도'모기장'을 어떻게 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신원태.오영환 기자

<사진설명>

나진.선봉지대 개방이 확대되고 영농개혁이 진행되는등 북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농민시장(장마당)이 우후죽순격으로 늘고

있다.본사가 단독 입수한 함흥의 농민시장. [통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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