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보스턴팝스 내한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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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팝스콘서트의 매력은 언제 돌발적인 해프닝이 벌어질지 모르는 예측 불가성에 있다.연주하면서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트럼펫을 공중으로 던졌다가 받는 묘기가 펼쳐졌다.또 금관악기 주자들이 일어나 하늘을 향해 나팔을 휘저으면서 연주하더니,한쪽에서는 육중한 더블베이스를 몇바퀴 돌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지휘자가 때로 왼쪽 다리를 흔들다가 때로는 박수를 쳐가며 흥을 돋워 나갔다.

보스턴팝스오케스트라는 첫 내한공연(13~14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지휘자 없이도 충분히 앙상블을 해낼 수 있는 추진력과 함께 탄탄한 중저음부의 풍만한 사운드를 선사했다.보스턴팝스호(號)는 37세의 선장 키스 로카트가 이끄는대로 순풍에 돛단듯 망망대해를 누볐다.삐그덕거리는 복잡한 리듬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를 타는 스릴도 만끽했다.빅밴드 시절의 글렌 밀러에서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를 지나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로 이어지는 음악여행을 통해 클래식과 팝을 아우른 미국 음악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보스턴팝스의 장점은 가벼운 음악을 연주하되 결코 연주기량 면에서나 음악적 짜임새에서 싸구려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는 점이다.난해한 현대음악은 아니었지만 살아있는 작곡가의 작품이나 편곡을 살아있는 오늘의 감각으로 들려주었다.

지휘자 로카트는 보스턴팝스를 자신의 개인 악기로 만드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특유의 순발력과 재치,발랄함과 겸손함을 두루 갖춘 무대 매너로 관객과 단원들의'귀여움'을 독차지했다.

30년대 보스턴팝스 전속 편곡가로도 활동했던 르로이 앤더슨,뮤지컬 발레 안무가 제롬 로빈스에게 각각 헌정하는 모음곡 형태의 편곡이 첫날 프로그램의 주류를 이뤘다.둘째날은 번스타인의'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이어 거슈윈의'랩소디 인 블루',존 윌리엄스와 제리 골드스미드의 영화음악,뮤지컬'캐츠'메들리,엘비스 프레슬리 메들리를 연주했다.

첫날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수자의'성조기여 영원하라'는 보스턴팝스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오랜 전통.이틀에 걸쳐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연주된 존 바네스 챈스의'아리랑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관심을 모았다.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가요'만남'에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가라오케를 즐기는 보너스도 함께 누렸다.하지만'만남'의 편곡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했다.

국내에 팝스콘서트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팝스오케스트라는 수준 이하의 연주를 들려줘도 된다는 생각을 낳은 것은 편곡 부재 때문이다.팝스콘서트의 생명력은 충실하고도 참신한 편곡에서 나오는 법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설명>

색다른 편곡으로'만남'을 선사한 보스턴팝스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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