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이름만 희미하게 기억 - 캄보디아 '훈'할머니 기구한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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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본군에 의해 지난 43년 군위안부로 강제로 캄보디아로 끌려간 것으로 보이는'훈'이라는 이름의 한국인 할머니(73)는 기구한 삶을 산 탓인지 아버지.어머니.고향인 진동등 몇몇 한국단어외에 한국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또 훈할머니는 같이 살고 있는 손녀딸 가족 때문인지 아직도 본인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말은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고 캄보디아주재 대표부 박경태(朴慶泰)대사는 전했다.그밖에 자신의 성이 장씨인지,어머니 성이 남씨인지등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게 훈할머니를 도와주고 있는 캄보디아 교민 황기연씨의 전언이다.

그러나 주변정황증거와 일본군과의 관계등을 고려할 때 군위안부였음이 거의 틀림없다는게 주변의 판단이다.

황씨가 훈할머니를 돌봐주면서 파악해본 바로는 훈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을'가와리 하나코'로,아버지는'가와리 오니'로 기억하고 있다.창씨개명한 이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아버지가 당시 마을에 2명 뿐이었던 일본인을 위해 일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뿐'면사무소 직원'등 공무원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언니도 있었지만 이름은 생각나지 않고 당시 일본 도쿄(東京)로 돈벌러 간 언니는 왼쪽 눈에 깊은 흉터가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그밖에 43년께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트럭에 실려 끌려갈 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다 끝내 실신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할머니는 2백~3백명의 다른 한국 여성들과 함께 강제로 캄보디아로 끌려갔으며 45년 5월엔 프놈펜의 한 위안소에서 현재 일본.캄보디아경제문화협회 비상임 이사이자 아시아.태평양국회의원연합(APPU)일본의원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다다쿠마 쓰토무(只熊力.76)를 만났다.

다다쿠마는 당시 일본군 장교였으며 위안소에 있던 훈할머니를 불러내 동거한 끝에 딸(94년 48세로 사망)을 낳기도 했다.지금은 이 딸이 낳은 3명의 외손녀들과 살고 있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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