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빈자리 10년 만에 채워졌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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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보육원에서 ‘고아’로 살았던 오진숙양이 16일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프리랜서 김성태

설은 만남의 시간이다. 전국 곳곳에 흩어졌던 가족이 긴 시간의 귀성 행렬을 뚫고 한자리에 모여 정담을 나눈다. 설을 열흘 앞둔 16일 대전의 한 보육원에서는 10여 년 만의 눈물겨운 가족 상봉이 있었다.
1998년 부산의 한 재래시장에서 세 살배기 손녀를 잃어버린 할머니가 대전의 한 보육원에서 14살이 된 손녀를 만난 것이다.

할머니는 실종신고를 해 놓고도 10년 동안 손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손녀의 DNA가 희망이었다. 경찰이 지난해 중순 DNA 분석을 이용해 할머니와 손녀의 끊긴 고리를 다시 연결해 줬다. 정부가 2004년부터 해 온 무연고 아동 DNA 데이터베이스(DB) 작업의 또 하나의 결실이었다.

DNA를 비교 분석해 실종 아동을 찾는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DNA DB화 작업이 시작된 2004년 4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05명의 아동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9월에는 대구의 이모(38)씨가 14년 전 시장에서 잃어버린 두 살배기 아들 최모군을 경찰의 DNA 대조 수사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대구성서경찰서 실종사건 전담팀은 지난해 4월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을 DNA 분석 기법으로 재수사하기 위해 어머니 이씨를 찾았다. 워낙 오래된 사건이라 이씨의 주소지가 달라졌지만 경찰은 의료기록과 휴대전화 요금 납부지 등을 추적한 끝에 이씨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간단했다. 이씨의 DNA를 검출해 국과수의 실종 아동 DNA DB와 대조한 끝에 충북 제천의 한 장애인 복지기관에서 최군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해 5월에는 야채상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가 실종된 아이가 8년 만에 부모의 품에 안기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2000년 4월 동대문운동장 근처에서 노점을 하던 김모(50)씨는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네 살배기 아들을 잃어버렸다. 김씨는 이후 매년 수차례 서울과 수도권의 아동보호시설을 뒤지고 다녔지만 헛일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지 4년이 지난 2004년 6월 김씨는 정부가 무연고 아동 DNA를 DB화하는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DNA를 채취해 보관을 의뢰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흘렀다.

지난해 초 DNA DB 작업을 진행 중이던 국과수가 김씨의 DNA와 일치하는 아이가 서울 신월동의 한 보육원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8년의 기다림이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말 현재 보육원 등 전국 보호시설에 있는 무연고 아동(장애인 포함)은 모두 1만5129명. 이들의 DNA DB화 작업은 실종아동전문기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주도하고 있다. 거의 완료된 상태다.

보건복지부 아동청소년보호과 이석규 과장은 “실종 아동이 국내 보육원에서 보호되고 있고, 부모가 아이를 찾으려는 의사만 있다면 이제는 DNA 대조 작업을 통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 1만5000여 명에 이르는 무연고 아동의 DNA DB가 사실상 완료됐는데도, 지난 4년간 부모를 찾은 아동이 100여 명에 불과하다. 경찰은 DNA DB에 대한 대국민 홍보가 아직 부족하거나, 부모가 아이 찾기를 포기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경찰청 미아찾기센터 이길호 계장은 “부모가 아이를 적극적으로 찾기 원해야 DNA 대조 작업을 할 수 있다”며 “결국 보호시설에 있는 무연고 아동의 상당수는 부모가 찾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부모가 경찰에 아이 실종 신고만 하면 찾을 수 있는 확률은 100%에 가깝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7년 8602건의 아동 실종 신고가 접수됐으며 이 중 아이를 찾지 못한 경우는 단 두 건에 불과했다. 2006년에도 총 7064건의 실종 신고 중 5건만 제외하고는 모두 해결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182센터와 무연고 아동 DNA DB화가 갖춰지기 전인 10년 전에는 아동이 실종되고도 못 찾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종 아동이 발생하면 우선 경찰청 미아찾기센터(전화 국번 없이 182)로 연락해야 한다. 관할 지역 경찰서에서는 부모의 침과 입 속 세포 등을 통해 DNA를 채취한다. DNA와 부모ㆍ실종 아동의 신상명세는 보건복지부 산하 위탁 기간인 ‘실종아동 전문기관’으로 보내진다. 실종아동 전문기관은 이 중 DNA 시료만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낸다.

이곳에는 총 1만8000건의 실종 아동 DNA를 DB화해 저장하고 있다. 국과수는 1차 DNA 대조 작업을 통해 친자 여부를 가리고, 맞을 경우 2차로 정밀검사를 해 최종 결론을 내린다. 국과수 김종진 유전자검사실장은 “통상 DNA 검사에 걸리는 기간은 1, 2차 조사를 통틀어 1개월 정도”라고 말했다.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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