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모' 아이 사랑이 으뜸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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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생후 8개월된 미나는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보채는 일이 잦아졌다. 잠도 덜 자고, 잘 안 먹고… 그래서 반년 이상 아이를 키워온 위탁모 공영순(46.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씨의 속은 타들어간다.

미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기에. 공씨는 "말귀를 모르는 아이도 출국날짜(해외 입양을 위해 한국을 떠나는 날)가 다가오면 그런 불안한 현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공씨는 1988년부터 위탁모 일을 해왔다. 아이들이 입양되기 전 가정에서 돌봐주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위탁모다. 보통 신생아 때 위탁모에게 맡겨져 짧게는 한 두달, 길게는 1년 이상 자라다 외국 등으로 입양간다. 입양아 57명이 그의 손을 거쳐 국내외로 입양됐다.

공씨는 "아이가 외국으로 떠나는 날 눈물을 뿌리며 '이젠 그만해야지'라고 결심하면서도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이 좋아 쭉 아이를 맡았다"고 털어놨다. 요즘 들어 TV 방송을 통해 연예인들이 입양아들을 맡아 돌보는 '사랑의 위탁모'코너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위탁모란 용어가 낯설지 않게 됐다.

특히 위탁모로 나선 전도연.엄정화.김민 등이 아이를 맡아 키우다 떠나보내는 광경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 덕분에 위탁모가 어떤 일을 한다는 것도 잘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위탁모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친부모 이상의 고충을 겪을 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위탁모는 "돈(양육비)보고는 절대 못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요 입양기관들이 위탁모 교육을 시키고, 위탁 가정 신청을 받지만 기관에서 받는 양육비는 월 45만원 이내다. 기저귀나 옷가지 등은 입양기관이 위탁모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위탁모 자격 요건도 까다롭다. 양육자의 나이가 대개 50세 미만이어야 하고, 위탁 가정의 자녀는 초등학생 이상이어야 한다. 입양 아동과 나이 차를 두기 위해서다. 기관에 따라서는 아이를 키우는 장소를 지상 층, 방 3개 이상 등을 갖추도록 기준을 둔다. 또 아이들이 아플 때를 대비해 입양 기관 인근 지역 거주자들로 제한하기도 한다.

실제로 위탁모를 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일이 힘들거나 정들었던 아이들과 헤어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만둔다.

홀트아동복지회 홍보과 이현주씨는 "요즘 들어 위탁모에 대한 문의가 꾸준히 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입양 전까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위탁 아동 중에는 저체중아를 비롯해 장애를 지닌 아동들도 많다.

위탁모 공씨는 "아무리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해도 식구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도저히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공씨의 경우 남편과 아들 둘이 10여년간 위탁 아동들을 손수 안아주고, 먹여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위탁모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위탁가정을 모집하는 입양기관들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동 위탁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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