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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스콧 맥닐리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회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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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컴맹'이나 퍼스널 컴퓨터(PC)가 원수같은 사람들은 이 사람의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임직하다.

“전화기를 들듯 컴퓨터를 쓸 수 있어야 한다.전기공학을 몰라도 다들 전화를 잘만 쓰고,양자물리학을 몰라도 TV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컴퓨터를 쓰기 위해 복잡한 지식을 배울 필요가 없다.” 새 기종의 컴퓨터가 나올 때마다 사느냐 마느냐로 고민해야 하고,새 버전이나 프로그램이 나오면 쏠쏠히 들어가는 돈도 돈이지만 소프트웨어 새로 익히기가 영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도 속이 시원할 소리가 있다.

“한국말을 하는데 돈을 내는가.한국어를 매번 조금씩 바꿔가며 97년 버전,98년 버전을 내놓는 회사에 돈을 바치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도스.윈도.유닉스등 컴퓨터 운영체제도 마찬가지다.이들은 누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대중의 것이어야 하지 매년 조금씩 새로운 것을 내놓으며 돈을 챙기는 소수에 독점돼서는 안된다.” 이쯤 되면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회장 빌 게이츠의 귀가 간질거릴만 하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SUN)사의 창업회장 스콧 맥닐리(42)에게는'실리콘밸리의 상어''위트가 넘치는 전사(戰士)'등의 별명이 붙어다닌다.천하무적이라는 게이츠를 물어뜯는 유일한'상어'며,MS제국에 도전하는 그의'이빨'에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친다는 소리다.

마침 19일부터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맥닐리 회장을 실리콘밸리 팰러 앨토 지역의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본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애완견 이름이 '네트워크' 그의 무기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컴퓨터 프로그램언어 자바(JAVA)다.그의 모토는'네트워크가 곧 컴퓨터'다.어떤 컴퓨터 환경에도 적용되는 자바언어를 쓰는 네트워크컴퓨터(NC)로 마이크로소프트.인텔 진영의 PC를 제압하려는 게이츠의'맞수'가 바로 맥닐리다.

이들이 벌이는 한판 승부의 결과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어떤 컴퓨터 체제를 선택해야할지,어디에 투자해야할지등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게이츠 만큼이나 괴짜다.다만 사사건건 게이츠의 반대편에 서서 창의력을 내뿜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의 집무실엔 PC가 단 한 대도 없다.회장실만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어디를 찾아봐도 PC는 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서류 없이 컴퓨터로 하고 모든 임직원과 4초 안에 온라인으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한꺼번에 4천여명의 본사 임직원 앞으로 메시지를 보낸다.중앙 서버(server)에 연결된 단순한 단말기를 통해서다.이른바 NC 체제다.

'위트가 넘치는 전사'는 여기서부터 벌써 본격적으로'이빨'을 드러냈다.

“뒷마당에 석탄을 쌓아놓고 발전기를 돌려가며 전기를 쓰는 집이 있는가.소프트웨어를 일일이 설치해야 하는 PC가 꼭 그짝이다.PC에 대한'미신'이 두 가지 있다.경쟁력이 있고 싸다는 것이다.만일 제너럴모터스(GM)가 우리처럼 모든 사무실에서 PC를 치우고 NC를 쓴다면 경비가 크게 절감돼 아마 99년형 모델을 반 값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NC는 중앙서버에만 소프트웨어를 넣어놓고 필요할 때 네트워크를 통해 꺼내 쓰는 체제다.맥닐리의 표현을 빌리면'전기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것처럼 쓰는 컴퓨터'다.

그의 NC에 대한 집착과 PC에 대한 혐오는 대단하다.팰러 앨토 본사의 중심건물 현관 옆에는 웬 개집이 하나 있다.개는 없는 빈 집이지만 큰 글씨로 집 주인의 이름이 쓰여있다.'네트워크-'.맥닐리가 키우고 있는 애완견의 이름이다.

NC와 PC가 다른 만큼이나 그는 게이츠와 철저히 다른 생활을 하고,다른

생각을 한다.

최근 게이츠가 시애틀의 워싱턴 호숫가에 최첨단.대규모 저택을 짓고 각국의

유명인사들을'기술서밋'에 초청해'집들이'를 한 반면 그는 실리콘밸리의 침실

세개짜리 집에서 몇년째 산다.

“가본 일이 없어 모르겠다.” 게이츠의 새집에 대해 그는 관심도 없다는

투였다.“한가족이 살기엔 너무 크다”는 시큰둥한 평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집 아닌 돈으로 이야기가 옮겨가자 그는 분명히 잘라 말했다.

“그는 지나친 부자다.” -당신은 어떤가.역시 부자가 아닌가.“편안하게

지낼 정도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나.“1~2%

된다.” 요즘 주가로 따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시장가치는 약

1백25억달러.따라서 그의 소유주식은 1억~2억달러를 좀 넘는다는

계산인데,지난해 포천 5백대기업(매출액 기준) 가운데 2백22위에 오른 기업의

창업회장치고는 아무리 여러사람과 함께 창업했다 해도 뜻밖의 적은

재산이다.

-오너라고 하기엔 어렵지 않은가.“그렇다.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주식은

광범위하게 분산돼 있다.그러나 나는 개인투자자 중 최대주주다.”

1억달러의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인센티브나 2백억달러를 벌기

위해 뛰는 인센티브는 결국 마찬가지며,어느 수준 이상의 재산가가 되면

그때부터는 '돈 이외의 다른 무엇'을 위해 일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도 하다.

윈텔(윈도와 인텔의 합성어.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을 이름) 진영과 PC에

대한 그의 생각은 더욱 각이 져 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NC로 가는 것은 결국 윈텔의 PC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 아닌가.“생존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윈텔이다.엄밀히 말하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자바 대 PC지,NC 대 PC가

아니다.또 자바는 생존전략의 산물이 아니라'고객'을 생각한 결과다.”

실제로 포리스터 리서치사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내 기업의 62%가

자바를 쓰고 있다.

빌 게이츠의 '독점이윤' 비판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인텔이

차고를 새로 지으면 거기에 맞춰 현대자동차의 높이를 새로 조정해야

하는가.우리는 윈텔처럼 컴퓨터 언어를 독점하지 않고 고객 누구나 어떤

컴퓨터 환경에서도 쓸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바를

개발했다.모든 인류가 공통의 언어를 쓰는 것과 같다.또 자바를 이용한

NC체제에서는 중앙 서버에 자료를 넣어놓고 관리하면 되므로 해커나

바이러스로부터 훨씬 안전하다.개인의 모든 정보를 담는 스마트 카드등을

쉽게 쓸 수 있는 체제도 자바다.” 그는 게이츠가'계획경제'로 독점이윤을

챙기는'괴물'인 반면 자신은'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나는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이 기술과 부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질수록

시장이 더욱 커진다고 믿는다.그것이 바로 시장경제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했다.하버드대를

자퇴하고 소프트웨어의 세계로 침잠한 게이츠와는 상당히 다른

경력이다.실리콘밸리에서도 그는 정통'테크놀로지 괴짜'라기보다'괴짜

최고경영자'로 더 이름나 있다.

겨우 6평 남짓한 그의 집무실에는 몇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하키 스틱

3개를 세워 만든 옷걸이.골프공.가족사진,그리고 맥닐리 자신이다.

아이스하키와 골프는 그가 오래 전부터 심취해 온 스포츠다.“클린턴처럼

골프를 자주 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면 좋겠다.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경영은 미국경영보다 어려운 모양이다.”요즘은 시간에 쫓겨 필드에 나갈

시간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핸디 7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결혼 전에는 핸디

3을 놓았다.결혼 당일 오전에 백 티에서 75타를 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라운딩이었다며 웃는다.

좀처럼 정장을 하는 법이 없고 격식을 싫어하는 그는 창업 15년째인 올해초

어느 서류에 36명이 사인한 것을 보고는'어떤 의사결정이든 단 두단계만에'를

철칙으로 정했다고 한다.

“나는 실무자로 시작해 관리자.경영자가 되었다.경영자는 기업의 방향과

문화를 생각하고 프로젝트 결정은 관리자가 하면

된다.”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기업문화는 '재미'로 축약된다.일 재미에

사로잡힌 사람들끼리 재미있게 일하자는 것이다.

자바 다음의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목표?

목표를 둔다는 것은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것과 같다.나의 목표란 아침에

출근해 재미있게 일하고 퇴근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출근해

재미있게 일하는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미래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도 비슷하다.“나는 미래학자도,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도

아니다.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바로 진보다.” 재미와 격식은

반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는 격식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

인터뷰 당일 아침 로비에서 그의 참모들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출근하는 직원 가운데 한 사람이 가벼운 아침인사를 하며 지나치길래

돌아보았더니 한손에 이동전화기를 든 노타이 차림의 맥닐리였다.

격식 안따지는 소탈한 성격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액 약 70억달러중 거의

절반은 해외시장에서 올린 것이다.한국에서도 올해 약 1억5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릴 계획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최근 한글과컴퓨터의 자바 기반

사무용 슈트 패키지의 한글화를 지원키로 하는 등 국내업체들과의 제휴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비즈니스 확대기회는.“삼성.LG등은 우리의 좋은

상대다.그러나 전략적 제휴나 특정 사업계획에 대해서는 공식발표가 나올

때까지 회장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최근 벤처 열기가

대단한데.“최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망하며 벤처자금도 가장 많이

들어가는 두분야는

인터넷워킹(반도체.소프트웨어.네트워킹.정보테크놀로지등)과 자바라는

조사결과가 있었다.한국은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 그의

장담대로 NC가 PC를 곧 누를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맥닐리 대 게이츠와 같은'경쟁'이 실리콘밸리의

테크놀로지를 진보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실제 윈텔진영은 NC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PC에 네트워크를 이용한

부팅기능을 첨가한'넷PC'라는 새로운 제품을 발표했다.

이번 인터뷰를 주선하고 함께 참석한 실리콘밸리의 사업가 아이크 리(리

테크놀로지 사장)는 인터뷰가 끝난 후“자바 언어는 확실한 자리를 잡았지만

윈텔에 익숙해진 PC사용자와 이미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는 윈텔환경

개발업체들이 자바를 쉽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라며“윈텔의 대규모

반격이 있을 향후 2년이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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