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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를 읽는 다섯 개의 키워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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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05면

‘여인의 화가’ ‘에로티시즘 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구스타프 클림트.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다섯 개의 키워드를 찾아봤다. 빈 클림트의 주 활동 무대. 빈은 몰락해 가는 구체제의 유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당시 빈에는 퇴폐적인 세기말 분위기가 만연했다.

자유주의·남성성·유대인의 정체성 등 기존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보수적인 귀족주의와 급진적 변혁사상 사이의 불균형이 천재적 사상가와 예술가를 키워내는 밑거름이 됐다. 지크문트 프로이트, 아널드 쇤베르크, 아르투어 슈니츨러, 구스타프 말러 등이 클림트와 동시대 빈에서 활동했다.

여자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클림트. 하지만 ‘빈의 카사노바’라고 불렸을 만큼 주변에 여자가 많았다. 자신의 모델이 된 여성과는 꼭 잠자리를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실제 모델 미치 치머만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얻었고, 부유한 제당회사 사장의 부인이자 ‘유디트 I’의 모델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와도 스캔들을 일으켰다. 클림트가 죽은 뒤 14명이나 되는 사생아가 클림트의 친자임을 주장하며 유산 상속을 요구했다고 한다.

에밀리 클림트가 네 점의 초상화를 남긴 여인 에밀리 플뢰게. 클림트와는 사돈 사이이자, 30년 가까이 이어간 ‘솔메이트’다. 클림트의 동생과 에밀리의 언니가 결혼하던 해, 29세의 클림트와 17세의 에밀리는 처음 만났다. 평생 독신으로 산 에밀리는 빈 패션계를 주름잡는 디자이너였다. 두 사람은 마치 『좁은 문』의 알리사와 제롬처럼 정신적인 사랑의 선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에밀리는 클림트에게 가장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여인이었다. 클림트가 뇌일혈 발작으로 쓰려졌을 때 남긴 첫 마디 말도 “에밀리를 불러 달라”였다고 전해진다.

자연 대표작 ‘키스’ ‘유디트’ 등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인지 클림트가 풍경화가라는 사실은 종종 잊혀진다. 하지만 그의 작품 220여 점 중 4분의 1은 풍경화다. 주문받은 그림이나 초상화를 그리며 돈을 벌었던 클림트는 휴가 기간에는 풍경화만 그렸다고 한다. 그에게 풍경화 그리기는 여가생활이자 취미였던 셈이다. 그가 휴가 기간에 자주 찾은 곳은 오스트리아 북부 아터제 호수다. 그의 풍경화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평안하게 보인다. 그에게 자연이란, 인간과 무관하게 고유의 세계를 가진 우주였던 것이다.

죽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 클림트를 평생 옭아맨 스트레스였다. 1892년 그의 둘도 없는 예술적 동반자였던 동생 에른스트가 젊은 나이에 뇌일혈로 사망하고, 연이어 아버지까지 뇌일혈로 사망하면서 받은 상처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클림트의 작품 속에는 삶과 죽음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여인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가는 과정을 한 장에 담은 ‘여인의 세 단계’와 죽음을 해골 형태로 형상화시킨 ‘죽음과 삶’ 등은 특히 죽음의 그림자가 짙은 작품이다. 생전의 클림트는 “60세까지 살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56세에 뇌일혈로 쓰러졌고, 그해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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