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변화무쌍한 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그러면 그 꿈이란 것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봤더니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라고 돼있다. 사전적 의미를 알게 되자 대답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누가 나에게 “그것이 무엇이냐” 물을까 두려울 정도다.

우주인이 된 이후 그 전보다 훨씬 자주 ‘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심지어 가끔은 “이소연씨는 꿈을 이루셨잖아요”라고 단정짓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내가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꿈이라는 것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TV를 보며, 또 어른들 대화를 들으면서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누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만났던 초등학생처럼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이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릴 적 상상 속의 대통령과 실제의 대통령은 참 많이 다르기도 했고, 또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물론 영화 속에서 우주선을 타는 금발의 박사도 그런 맥락에서 나의 꿈 중 하나였고, 대학원 진학을 고민할 때 ‘멋진 교수님’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꿈은 계속 변해 왔다.

대학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나의 꿈은 실험실 사람들에게 멋진 저녁을 사는 것일 때도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던 그때, 실험이 늦게 끝난 저녁, 후배들에게 맥주를 사주던 선배가 참 멋져 보였다. 나는 거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폼나는 저녁을 쏘면서 동료들을 신나게 해주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무렵 또 꿈은 자라기 시작했다. 공학을 하면서 힘들어 하는 친구·동료·선배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내 주변과 현재 내 자리,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연관되어 바뀌게 된 것 같다.

누구나 고교 시절 진학할 대학과 학과를 고민한다. 또 발을 디딘 분야에서 세상을 뒤흔들 만한 대가가 되기를 꿈꾸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 역시 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에 진학하면서 세상을 뒤흔들 만한 발견을 한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우리 고등학교에도 나보다 천재적이고, 멋진 연구를 할 법한 친구들이 많았다. KAIST엔 더 많았다. 그러면 내 꿈은 또 변신을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교수님을 도와 과학기술 관련 행사들을 진행하면서 나는 내가 대단한 연구를 하기보다는, 이런 연구들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이해시키는 일에 더 재미를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연구에 푹 빠져 세상과의 소통에 서투른 친구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꿈을 키우던 중 우주인이 될 수 있었다. 동시에 꿈을 이루었다기보다는 과거의 그 꿈이 우주인이라는 나의 위치를 통해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꿈은 절대 불변의 것이 아닌 변화무쌍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꿈 너머에는 또 다른 꿈이 자라고 있고, 그래서 무지개를 잡는 것처럼 불가능하고 어려운 것이라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꿈은 이루는 자체보다 이루기 위해 달려갈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흡사 소풍은 항상 소풍 그 자체보다 가기 전날 준비할 때가 훨씬 신났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우주인
◆약력:KAIST 기계공학과,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 박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