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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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도철은 우풍과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호스트바에서 여전히 일하며 숙식을 적당히 해결할 수 있었다.호스트바 주인이나 지배인은 우풍의 이름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려도 자기 업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그 애라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하였다.도철은 우풍이 무슨 사정이 생겨 업소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만 지배인에게 전했을 뿐이었다.

호스트바에 오는 여자 손님들은 종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니키 마우마우단 이야기나 로즈 버드단 이야기를 늘어 놓기도 하였다.특히 가출 소녀들로 구성된 로즈 버드 단원에 대하여 같은 여자들로서 관심이 더 가는 모양이었다.호스트바에 스트레스를 풀려고 오는 호스티스들은 자기들의 처지가 로즈 버드단과 피장파장이어서 그런지 비교적 로즈 버드단에 관하여 동정론을 펼치기도 하였다.

“로즈 버드? 왜 하필 원두 커피 이름을 자기들 조직 이름으로 했을까? 원두 커피처럼 고소하고 상큼한 영계들이라 이건가? 단 한번뿐인 인생의 자유를 위하여? 자유,그거 좋지.그 자유를 위해서는 까짓껏 학교고 가정이고 다 버릴 수 있어야 멋진 여성이지.나같이 룸살롱에 나와 번 돈을 동생 학비로 보내고 하는 년은 아직 멀었어.로즈 버드단원들에게 한 수 더 배워야 한다니까.”“소문에는 니키 마우마우단과 합하여 도시 게릴라를 조직하려고 했다며? 자기들 아지트에 관을 갖다놓고 살인 연습도 했다는데? 사회의 부조리를 뿌리뽑는 게릴라들.사회의 쓰레기들은 가차없이 처단하여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다며? 하긴 청소차가 제때 치워가지 않는 쓰레기는 사적으로 알아서 치워야지 어떻게 해? 공벌(公罰)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사벌(私罰)을 내리는 조직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난 아무래도 그 니키 마우마우단이나 로즈 버드단이나 폼 난다고 생각해.”“근데 딸을 범했는지 안 범했는지 알 수 없는 아버지 하나를 처단한 것밖에 뚜렷하게 한 일도 없잖아.”“전력으로 보아서는 양녀를 범했을 거 같애.이번에 잡힌 니키 마우마우단원이 그랬다며? 딸을 범한 아버지를 처단한 것은 시대적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린 그 권위를 아예 박살내버리는 거라고 했다나.”“난 도대체 복잡하고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처녀가 애를 배도 다 핑계가 있다고,어쩐지 그럴 듯하게 말을 꾸미는 핑계같이 들린다.”“처녀가 애를 배지 총각이 애를 배니? 호호호,자,우리,니키 마우마우단과 로즈 버드단을 위해 건배하자구.그리고 우리 피앙세 룸살롱을 위해서도.우리 룸살롱을 드나드는 머저리 오빠들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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