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기행>1.'서편제' 완도군 청산도 당재언덕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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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잘츠부르크가 아름다운 것은 모차르트 때문만이 아니다.'사운드 오브 뮤직'은 잔잔한 감동으로 잘츠부르크를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남게 해준다.추억의 명화나 화제의 대작등 영화의 배경지.촬영지를 찾아 떠나는'스크린 기행'에 초대한다. 편집자

남도가 어디더냐.핏빛 황토 깊숙이 전 한을 애절한 육자배기 가락으로 승화시키는 곳.'함평 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려하고'로 시작되는 명창 임방울의 '호남가'는 전라도 쉰 두군데의 고을을 두루 노래하면서도 유독 청산도를 빠뜨렸다. 완도에서 뱃길로 50리.전남완도군청산면은 섬 색깔이 파래 이름도 청산(靑山)이다.파란색을 띤 보리잎이 5월초면 섬 전체를 풋풋한 청록색으로 색칠한다.5월말 보리수확이 끝난 자리에 콩과 고구마.마늘.유자잎이 푸른색을 대신하다가 9월께 가서야 거뭇한 밭흙과 돌담의 윤곽이 여기저기 드러난다.

그러던 어느날.청산도 당재언덕 높은 곳에서 황톳길을 따라 시나브로 내려오는 세 사람이 있었다.아버지(유봉)는 등짐을 메고 흰저고리 검은치마의 딸(송화)은 가방을,떠꺼머리 아들(동호)은 북을 들었다.고단한 유랑의 혼들.그러나 이들의 느린 걸음은 아버지가'진도아리랑'을 선창하고 딸이 이에 화답하면서 아연 활기를 띤다.당재 초입에서 시무룩하던 아들도 내려올수록 힘있게 북채를 잡는다.언덕아래에선 세 사람의 어깨춤이 덩실 어울린다.

'소리따라 흐르는 떠돌이 인생/첩첩이 쌓인 한을 풀어나보세…'. 한국 영화사상 최다관객(서울 개봉관 1백3만명)을 동원한 영화'서편제'(원작 이청준.감독 임권택)의 명장면인 진도아리랑 신이 바로 여기에서 촬영됐다.언덕 위에서 아래까지 약 4백.당재 정상에 콩알만하게 세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해 언덕 아래에서 화면을 가득 채우며 어깨춤 소맷자락을 들어올리기까지 5분40초가 단 하나의 컷으로 촬영된 한국영화사의 기념비다.이와 비슷한 롱테이크(오래 찍기)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도 보이지만 감동은 서편제쪽이 훨씬 더하다.촬영감독 정일성은 거장답게 카메라워크를 자제하면서도 영상효과를 중모리에서 자진모리로 침착하게 증폭시켰다.막판에 때마침 불어준 가벼운 회오리바람과 먼지.이는 소리꾼 가족의 거친 미래를 암시하며 영상미를 한껏 고조시킨 청산도 자연의 '선물'이었다.

'서편제'팀은 이 장소를 찾기 위해 한달간 호남전역을 뒤졌다.전봇대가 없고 높지도 낮지도 않으며 아름답되 야단스럽지 않은 곳.당재 뿐만 아니라 청산도 전체의 인상이 대략 그렇다.송화(오정해)와 동호(김규철)가 아버지 유봉(김명곤)에게 소리를 배우는 장면과 송화어머니 금산댁(신새길)의 해산장면도 당리마을 초가에서 촬영했다.92년 촬영당시 여섯채던 초가집이 지금은 세채로 줄었다.그나마 영화를 찍었던 김처임(72.여)씨의 초가는 현재 빈 집이다.주인이 2년전에 아들따라 완도로 이사를 가버렸기 때문이다.

'서편제'이후 청산도엔 육지인들의 발길이 크게 늘었다.한국 최고의 영화를 찍은 것을 계기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인 이곳 풍광이 새삼 알려졌다.지난해 7만명이 찾았고 올해는 10만명이 예상된다.18.5㎞(포장구간 15㎞)에 이르는 일주도로를 타고 둥근 소라모양의 섬을 둘러보노라면 대모도.소모도.여서도등 새끼섬과 함께 맑은 날 제주도 한라산까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름드리 해송 수십그루가이가 크게 늘었다.한국 최고의 영화를 찍은 것을 계기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인 이곳 풍광이 새삼 알려졌다.지난해 7만명이 찾았고 올해는 10만명이 예상된다.18.5㎞(포장구간 15㎞)에 이르는 일주도로를 타고 둥근 소라모양의 섬을 둘러보노라면 주변에 대모도.소모도.여서도등 새끼섬과 함께 맑은 날 제주도 한라산까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름드리 해송 수십그루가 우거진 지리해수욕장(백사장 1.2㎞)과 신흥리해수욕장(백사장 2㎞)은 여름에도 한산하다.고인돌(읍리)과 갯바위낚시 명소(권덕리)도 올여름 가족휴가후보지'1순위'에 손색없다.

청산도를 찾기 전 해야 할 가장 큰 준비는'서편제'를 비디오로 다시 한번 보는 것.소리 때문에 딸을 눈멀게 한 유봉,눈이 먼 송화,가족을 버린 동호는 영화 마지막에서'심청가'를 부르며 소리로 한을 넘어선다.만나서 응어리를 푼 뒤 아무 말없이 헤어진다.가락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얼싸안은 사람들.남도의 끝,청산도는 그렇게 가고 와야 하리라.

아름드리 해송 수십그루가이가 크게 늘었다.한국 최고의 영화를 찍은 것을 계기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인 이곳 풍광이 새삼 알려졌다.지난해 7만명이 찾았고 올해는 10만명이 예상된다.18.5㎞(포장구간 15㎞)에 이르는 일주도로를 타고 둥근 소라모양의 섬을 둘러보노라면 주변에 대모도.소모도.여서도등 새끼섬과 함께 맑은 날 제주도 한라산까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름드리 해송 수십그루가 우거진 지리해수욕장(백사장 1.2㎞)과 신흥리해수욕장(백사장 2㎞)은 여름에도 한산하다.고인돌(읍리)과 갯바위낚시 명소(권덕리)도 올여름 가족휴가후보지'1순위'에 손색없다.

청산도를 찾기 전 해야 할 가장 큰 준비는'서편제'를 비디오로 다시 한번 보는 것.소리 때문에 딸을 눈멀게 한 유봉,눈이 먼 송화,가족을 버린 동호는 영화 마지막에서'심청가'를 부르며 소리로 한을 넘어선다.만나서 응어리를 푼 뒤 아무 말없이 헤어진다.가락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얼싸안은 사람들.남도의 끝,청산도는 그렇게 가고 와야 하리라. 청산도=임용진 기자

<사진설명>

계단식 보리밭이 가지런한 청산도 당재언덕.불행한 소리꾼인 유봉일가가 언덕왼쪽 소나무에서부터 오른쪽 아랫길로 걸어 내려오며'서편제'중 가장 맑고 가슴 시큰한 명장면을 남겼다.소나무숲속에 섬의 성소인 당집이 있고 그 건너편이 당리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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