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강간’ 유죄 받은 남편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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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부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L씨(42)가 20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일 오후 2시30분쯤 부산시 남구 우암2동 자택에서 L씨가 전깃줄로 목을 매 숨진 것을 이웃에 사는 조카 장모(2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친척집에 가 있는데 외삼촌이 전화를 걸어와 ‘죽겠다’고 말해 급히 집을 찾아가 근처에 사는 외할머니와 함께 자살을 말린 뒤 잠시 나갔다 돌아오니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또 “외삼촌이 강간죄 유죄선고를 받은 뒤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L씨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필리핀인 아내(25)를 지난해 7월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특수강간)로 16일 부산지법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L씨는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다.

또 19일 모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결혼 후 아내가 집안일에 소홀하고 온갖 구실로 돈을 요구했고, 가출까지 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않아 다투던 중 우발적으로 일이 벌어졌다”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모르고 검찰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한 게 화를 불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L씨는 또 “항소심에서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L씨가 국내 처음으로 부부 간 강간죄를 인정한 재판 결과에 반발한 데다 이날 오전에도 자살을 시도한 점 등에 미뤄 유죄 판결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지법 박주영 공보판사는 “검찰의 공소 사실에 대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판을 진행했는데 피고인이 자살해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부산=강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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