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투자보다 중요한 게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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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식당 카운터 뒤에 숨어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고객을 헤아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신용카드 회사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다. 또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경기를 판단하려고 여성 속옷 판매지수(여성들은 불황기엔 겉옷 사기가 버거워 속옷으로 대리만족을 한다)를 살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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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현재 경제 상황을 알고 투자 원칙을 세우려면 나만의 ‘경제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매일 경제 상황을 알려주는 경제 프로그램 진행자의 ‘눈’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대중의 귀를 쫑긋거리게 하는 각 방송사 대표 진행자들의 거침없는 ‘코멘트’를 담았다.

경제 프로그램 앵커가 ‘경제를 보는 눈’ #장철·박경철·성기영·유종일 등 경제 전문 방송인이 말하는 대한민국 경제

질문 순서

- 경기를 진단하는 나만의 ‘바로미터’는?
- 그렇다면 현재의 경제 상황은.
- 경기가 언제쯤 살아날까?
- 나만의 투자 원칙이 있다면?
- 그 투자 원칙을 잘 실천하고 있나?
- 올해 투자 시 가장 유의해야 할 점.
- 꼭 추천하고 싶은 ‘위기관리’ 원칙은.
- 경제 정보를 전달하는 나만의 전략.

질문은 크게 ▶현재 경기 분석 ▶경제 전망 ▶투자 전략 세 가지로 나눴다. 방송 진행자 모두가 현재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장철 교수와 성기영 아나운서는 주유소 기름값, 부동산 중개업소의 분위기 등 일상의 변화를 통해 경기를 판단했다.

유종일 교수는 경기를 진단하는 특별한 비법이 없다는 진솔한 답을 내놨다. 언제쯤 상황이 좋아질까. 장 교수는 올해 하반기 회복, 박경철 원장은 연초면 떠도는 ‘상저하고(上低下高, 상반기에 성장률이 낮고 하반기로 갈수록 높아지는 것)’와 반대되는 ‘상고하저(上高下低, 기대감으로 오히려 상반기 성장률이 높은 것)’로 진행될 거라고 전망했다.

성 아나운서와 유 교수는 구체적인 전망을 피하고 지금이 바닥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이들이지만 일파만파 번지는 언론의 영향력을 의식해서인지 신중한 투자 전략을 구사할 것을 권했다. 박 원장은 본인의 재테크 상황을 묻는 질문에 “노 코멘트”라 답했고 유 교수는 “재테크 얘기는 그만”이라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장 교수와 성 아나운서는 부부임에도 상반되는 투자 전략을 펼치고 있다. 장 교수는 펀드에 투자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반면 성 아나운서는 투자 자산을 모두 정리하고 숨을 돌리는 중이다. 모두가 강조한 ‘투자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는 말을 직접 보여준다.

이들은 “위기 시에는 돈을 버는 것보다 건강, 자신의 능력, 가정을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성 아나운서는 경제원론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며 공부할 것을 권했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기회를 기다리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YTN ‘장철의 YTN 생생경제’ 장철 한세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해외에 있는 지인과 연락하라”

- 국제 유가나 철강 가격, 금값, 밀가루 값 등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움직임으로 경제의 큰 흐름을 판단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전설적인 투자가라 불리는 피터 린치가 사용한 방법을 쓰는데,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서 장을 볼 때 소비자가 어떤 상품에 몰리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상품과 관련된 업종을 전망하는 것이다.

- 국제 유가를 대표적으로 보자. 생활 속에서도 주유소에 가면 얼마든지 쉽게 기름 값을 체크할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당분간 이런 추세는 뒤집히기 어려울 것 같다.

- 올해 1분기가 가장 큰 위기다.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회복 시기가 결정될 것이다.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기업과 가계가 적극적으로 호응해 힘을 모으면 올해 하반기에 회복의 조짐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아무리 좋은 투자처라도 한 곳에만 집중 투자하는 것을 자제한다. 또 일단 투자 시기를 놓쳤으면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라’는 격언을 생각하면 지금은 재테크에 나설 준비를 하는 시기다. 현재 펀드 투자를 고려하고 있고, 경기 상황을 봐서 2, 3분기쯤 부동산 투자를 할 생각이다.

- 1분기에는 위험 관리에 집중한다. 정부 정책 내용, 추진 강도 등에 따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 만약 정부 정책이 표류한다면 하반기까지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하고, 긍정적으로 흘러간다면 당장 경기 지표는 나빠도 일부 투자해 볼 만하다.

- 자금 성격, 투자 성향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분산 투자하도록 한다. 또 무조건 남의 말만 믿으면 안 된다. 발품을 팔고 직접 뛰어다니면서 신중하게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청취자가 가장 궁금해 할 내용, 아마 100원이라도 더 벌고 더 아낄 수 있는 정보가 아닐까. 가능한 한 쉽게 풀어서 전달하려고 한다. 또 글로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해외 현지의 주재원, 유학생들과도 수시로 연락을 취해 실시간 정보를 얻고 있다.

KBS2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박경철 경제 칼럼니스트
“왜곡된 정보, 양비론 조심하라”

-‘모두가 합창하면 반대로 간다’는 합창(合唱) 반대의 원리를 항상 염두에 둔다. 기본적으로 수출과 내수, 고용과 소비를 알 수 있는 자동차 업종의 경기와 주가를 살핀다. 채권·주식·예금·부동산에 언제 투자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금리 변동도 중요하다.

- 현재 상황은 지극히 나쁘다. 하지만 아직 최악이 아니다. 부동산 경착륙 여부에 따라 하반기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 위축-판매 감소-설비 투자 감소-고용 축소-소비 추가 위축’의 악순환을 탈출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상저하고’라는 일반적 경기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부, 은행, 기업, 가계 모두 돈이 없다. 게다가 부채는 높다. 부채 조정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회복이 이뤄질 것이다. 따라서 ‘상고하저’ 현상이 올 것이다.

- 가장 훌륭한 투자는 자신의 능력에 투자하는 것이다. 재테크는 여유 자금으로 해야 한다.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투기요, 땀 흘리지 않고 버는 것은 도박이다. 빚을 낼 때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고 생각하라.

- 노 코멘트.

- 근거 없는 ‘낙관’과 지나친 ‘비관’ 모두 경계한다. 그리고 중국 경제가 현재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경계할 것.

- 자승자강(自勝自强).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강한 자라는 뜻이다. 투자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다.

- 정직하고 솔직히 방송을 하는 게 우선 목표다. 또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 적게 아는 사람 간의 불균형을 없애고,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으려 한다. 특히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양비론(양시론)을 경계한다.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중요한 심층부의 목소리까지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게 경쟁력.

KBS1 ‘성기영의 경제투데이’ 성기영 KBS 아나운서
“위기일수록 원론부터 공부하라”

- 제조업 경기, 고용 지표, 원자재 가격 등 경기를 진단하는 바로미터는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경제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이런 바로미터로 경기를 어떻게 진단하겠는가. 그보다는 주로 일상의 사소한 변화를 보고 경기를 판단한다. 가령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는 사람이 줄거나, 택시 승강장에 택시 행렬이 길어지는 것을 경기와 연관짓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 투자 상담을 하는 청취자가 많아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데, 나만의 부동산 경기 진단법이 있다. 관심 지역, 관심 지역의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는 지역, 언론에서 자주 언급하는 지역의 중개업소 몇 곳을 찾아가 한 시간만 앉아있어 보면 동향을 알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이 방법은 가까운 미래의 경기를 진단하는 데 유효하다는 점이다.

- 올해 취재 차 여러 중개업소에 동향을 물었더니 대개 죽을 맛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또 가까운 중개업소에 들러 차 한 잔 마시는 동안 전화 한 통 울리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 V자형 반등이 아닌 L자형으로 바닥을 다지는 과정이 1년 정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 이후에야 회복을 논하겠다.

-‘욕심내지 말자, 때를 기다리자, 기회가 올 때까지 준비하자, 때가 오면 과감히 감행하자’가 평소 투자관이다. 실패를 두려워 말자. 결혼할 때 남편과도 약속했다. 서로 투자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비난하지 말자고. 하지만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은 해야 한다. 바로 공부하는 것.

- 쉬는 것도 투자다. 2006년에 부동산, 2007년에 펀드 자산을 정리했다. 펀드 열풍이 불었을 때는 아쉬운 감도 있었지만 그 전에 얻은 수익에 만족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 가능한 한 현금을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 금리 인하 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부동자금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방향이 정해진 뒤에 움직여도 늦지 않다.

- 건강한 몸, 넉넉한 재물을 갖는 것이 ‘복 중의 복’이라 했다. 경제 위기일수록 건강에 신경 쓰고 ‘마지막 보루’인 가정을 돌아보라. 자산 관리에 부족했던 점을 파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하자.

- 당연히 공부한다. 깊게 알아야 쉽게 전달한다. 특히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클 때는 원론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맨큐의 경제학』을 펼쳤다. 또 매시 매분 청취자가 무엇을 궁금해 할지 고민한다. 확대 해석은 금물, 가능한 한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전달한다.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것을 담으려 애쓴다.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유종일입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이미 본 손실은 털어버려라”

- 비법은 따로 없다. 그냥 통계와 숫자를 보고, 연구보고서와 논문을 읽는다. 솔직히 현장경제를 피부로 접할 기회는 별로 없다. 그저 택시 타면 기사와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식당 가면 한마디씩 건네 보는 수준이다. ‘손경제(손에 잡히는 경제)’도 제작진이 “강의실에서 학생 몇 십 명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라디오에서 뭔가 찾으려 하는 수많은 서민을 외면해서 되겠느냐”고 설득해서 맡게 됐다. 방송하면서 현장경제 감각이 많이 발달했다.

-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 지표상으로도 그렇고 방송하면서도 느낀다. 문제는 앞으로 더 나빠질 거라는 데 있다. 해외 요인이 중요한데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정부가 잘해야 하는데 잘못 흘러가는 정책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정부 초기의 고환율 정책, ‘747 공약’에 따른 고도성장 정책 등이 그렇다.

- 미래는 절대로 예측할 수 없다. 단지 경제학 모델에 입각해 ‘어떻게 될 확률이 얼마쯤 된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있다.

- 첫째 재테크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다.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훨씬 더 중요하다. 둘째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비율을 3대 1 정도로 유지한다. 잃어도 상관없을 만큼만 주식에 투자한다. 셋째, 장기 투자한다. 넷째, 부동산 투자는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비난하지 않는다.

- 노 코멘트.

- 재테크 조언은 가급적 하지 않는다. 가끔 출연자가 좀 공격적으로 말하면 ‘과연 저 말에 책임질 수 있을까’ 싶다. 방송하면서 정부가 해외펀드 비과세 혜택을 준다고 했을 때, 해외 펀드가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느냐고 비판한 적이 있다. 실제 해외펀드가 손실을 크게 봤다.

-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리지만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기회가 온다.

-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대략적이라도 꿰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방송을 진행하기 전보다 신문을 더 많이, 자세히 읽는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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