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街, 불황타개책 작은 그림 판매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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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미술 대중화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한국화랑협회가 기획했던 싼 가격의 작은 그림 판매전'한집 한그림 걸기'.'양도세 부과'라는 위기에 몰려 일종의 대(對)정부 무마용으로 자의반 타의반 95년과 96년 두번 실시한 이 행사의 후유증을 말하는 화랑들이 많다.깊어진 미술계 불황을 이 행사 탓으로 돌리기까지 한다.한번 싼 맛을 봤는데(상한가가 95년은 1백만원,96년은 3백만원)누가 화랑에 와서 제값을 주고 작품을 사겠느냐는 푸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제는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화랑들이 너도나도 자체적으로'한집 한그림 걸기'를 기획한다.'불황 타개책'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그림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 이 열기에 불을 붙인 것은 선화랑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마련한'2백인작가 1호전'이라는 대형(?)소품전.권옥연과 김흥수.변종하등 원로 유명작가에서 김점선.문봉선.육근병등 젊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2백명의 1호 작품을 20만~3백만원에 판매했다.

표화랑은 아예 올해 상반기 전시 대부분을 소품전으로 기획했다.박영하 소품전,이두식 소품전에 이어 지금은 강렬한 원색이 이국적인 풍취를 발하는 유병엽의 0~2호짜리 소품전을 열고 있다.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화랑미술제에도 소품 바람은 계속됐다.표화랑을 비롯,대구 맥향화랑등 소품 위주로 출품한 화랑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처럼 화랑들이 소품 위주로 전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결코 장사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1호짜리가 아무리 많이 팔려도 큰 작품 하나 파는 것만도 못하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화랑들이 밝히는 이유는 바로 고객 유인책. 표화랑 큐레이터 조권희씨는“평소 큰 작품,비싼 가격에 부담을 느끼던 사람들도 이 기회에 화랑에 와서 소품 한점 구입하면서 다른 소장품들도 구경하라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말했다.

화랑미술제는 실패했지만 정작 이런 의도가 가장 잘 맞아떨어진 것은 한국고미술협회가 지난달 15일부터 27일까지 공평아트센터에서 열었던 97한국고미술대전(본지 5월20일자 41면).불황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21억여원(경매가 1억8천만원 포함)의 작품이 팔렸다.판매된 1천여점의 작품 가운데 60% 이상이 5백만원 이하의 소품이었지만 3천2백만원의'고종 어진'등 고가 작품도 예상외로 많이 팔렸다.경기가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을 때의 협회전 총 판매액이 15억원을 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성공.단순히 좋은 기획,합리적인 가격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안혜리 기자

<사진설명>

이영철의 1호짜리 소품.각각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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